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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바다의 귀환
[學而思] 바다의 귀환
  • 정문수 한국해양대·유럽학과
  • 승인 2010.04.1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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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대륙국가인 중국은 1988년 TV 다큐멘터리 ‘河’, 2005년 정화 원정 600주년 기념 국가프로젝트, 2006년 TV 다큐멘터리 ‘大國起’를 통해, 세계강국이 되려면 해양국가로의 변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련의 국가 기획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요지는 이렇다. 중국이 근대화에 뒤처진 이유는 해양성(개방성)의 결여 때문이며, 근대 유럽 국가들이 열강 반열에 들어 선 것은 해양력을 중시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민족·종교·국가·지역을 초월하는 해양성을 회복해야 한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이 해양수산부를 통폐합하면서 동시에 남해안시대와 바다와 연안을 주제로 한 여수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세계 5대 해양강국으로 진입하겠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철학적으로도 빈곤해 보이지만, 바다를 통해 강국의 반열로 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중국과 다를 바 없다.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21세기 신해양시대에 바다는 자원, 에너지, 해양영토, 물류·관광의 관점에서 다시 주목받는다.     

    ‘바다가 육지라면’ 애절한 이별과 눈물은 없을 것이라는 유행가 가사는 폐기처분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지금 해양영토 전쟁 중’, ‘세계는 지금 해양자원 전쟁 중’,‘바다는 땅이다’,‘세계로, 바다로’,‘북극을 호령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등과 같은 구호 아래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가 차원의 기획이 신해양시대를 대변한다. 그러나 해양을 통한 신국부론은 21세기 바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다의 귀환은 근대의 위기로 인해 나오기 때문이다.

21세기 바다의 귀환은 국민국가에 포섭된 바다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의 전망을 제시하는 바다이다. 육지의 모순을 바다로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육역세계에서 전개된 진보·진화론과 국민국가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적 비전을 실험하는 것이다.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은 21세기 바다의 귀환과 맞물려 있다. 바다로 향해 열린 해항도시(seaport city)가 주된 연구대상이다. 연구 필드인 해항도시를 點으로 본다면 해항과 해항을 연결시키는 바닷길은 線으로 구체화되며, 바닷길과 바닷길을 연결시킨 面은 해역이 된다. 해역과 해역은 연쇄적으로 연결된다. 해항도시 문화교섭 연구는 국가와 민족이란 분석단위를 넘어서, 해역이라는 일정한 공간을 상정하고 그 해역에서의 문화생성, 전파, 접촉, 변용에 주목하면서 문화교섭 통째를 복안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해항도시, 해항도시네트워크, 해역을 키워드로 하는 해항도시 문화교섭연구는 2005년부터 일본, 대만, 중국의 해항도시문화연구소들과 매년 국제학술대회와 학술교류를 통해 구체화 된 것이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올해부터는 연구소장 회의를 통해 적어도 6개월 전에 학술대회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연구자가 신고를 발표하고 그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사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박사학위 주제로 삼았던 필자가 국민국가의 경계와 분단적인 국민의식을 넘어서는 완만한 공간의 구축과 새로운 세계단위의 모색으로 시야를 돌릴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해항도시와 바다를 주제로 한 인문학의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인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은  앞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수정·보완돼야 할 발전도상에 있는 연구다. 사업 선정 후 약 1년간은 인력충원과 연구공간 확보 등의 인프라 구축에 주력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사실상 본격적인 집단연구에 착수하는 셈이다.

    모든 근대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국민국가의 안녕과 국익이라는 현실성에 기초해 개별국가에 봉사하는 국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해항도시 문화교섭학은 국학에 의해 제한된 영역을 초월해 국가의 경계를 상대화시킨다. 또한 국익을 기본으로 하는 해양국가의 관점에 경종을 울리고 인류사의 관점에서 지구와 지구환경에 대해 종합적으로 생각하는지구론을 목표로 한다. 국민국가와 국민경제의 틀 속에서 국가건설과 근대화, 경제적 발전 그리고 공업화를 목표로 했던 20세기 논리는 해항도시의 문화교섭학이 제시하는 미래상으로 교체되길 희망한다.

정문수 한국해양대·유럽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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