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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주변의 지식노동자
[딸깍발이] 주변의 지식노동자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 독문학
  • 승인 2010.04.0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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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승리를 얻었던 자들이 살아서도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한나 아렌트가 동시대의 동료 지식인이었던 불우한 운명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과 고독했던 아스팔트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발터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문학연구 결과인 『독일비애극의 원천』을 프랑크푸르트대학에 교수자격논문으로 제출했으나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교수들의 평가에 본인 스스로 논문 청구를 철회했다. 이후 기득권 교수들의 평가와는 달리 『독일비애극의 원천』은 또 다른 평가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했다. 하지만 교수로서의 길이 좌절된 벤야민은 생계를 위한 지식 노동자로 고통과 궁핍의 길을 걷다가 결국 망명의 길에서 음독자살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사망할 당시 2백 권의 책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카프카의 동료들과 소수의 독자들에 의해 현대 산문의 대가로 인정을 받은 그는 한국에서도 ‘카프카 학회’가 결성될 정도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발터 벤야민과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이 우울한 전설을 봄날에 떠올리게 된 이유는, 이번 학기 ‘문화이론’ 강의를 하며 ‘그래도 대학 내에 연구실이 있는 나에게’, 교정의 꽃보다는 대학 울타리 밖에 있는 지식노동자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가 되며 한국 대학에 불어 온 ‘문화학’ 열풍은 대단한 위용을 발휘하고 있다. 대학의 인문분야 강의는 대부분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보다는 문화현상 내지 문화이론을 배경으로 한 강의로 대체된 것 같고, 학자들이 지양하는 인문학 자체도 전통적인 의미의 인문학이 아니라 퓨전인문학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들 때가 많다.

    필자는 1960년대 이후 영국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문화학이나 오늘날 우리 강단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식의 문화현상 연구보다는 전통적인 의미의 이론 전개상황 파악에 강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문화인류학, 문화심리학, 문화사회학, 문화철학 분류의 틀 위에 대표적인 학자들을 선별해 각각의 이론적 특성과 이들의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강의하고 토론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대표하는 학자들의 학문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그들의 개인적인 삶은 궁핍과 불운, 실패와 박해, 그리고 인정받지 못함으로 나타난다.

    그들 중 게오르그 짐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대학 주변의 지식노동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표적인 예로 떠오른다. 게오르그 짐멜은 20세기 초반 『돈의 철학』, 『메트로폴리스와 정신적 삶』등 현대 문화이론의 중추적인 연구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20여년의 강사생활 후인 56세에 슈트라스부르크대학의 정교수가 됐다가 60세에 세상을 떠난 학자이다. 그는 당대에는 별로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나치를 피해 36세에 망명의 길에 오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57세에 영국의 한 대학에서 전임강사가 됐고 64세에 아프리카 가나에서 교수가 돼 몇 년간 활동했다. 이후 82세가 되도록 독일의 이곳저곳의 대학에서 학기 단위의 초빙교수를 하다가 93세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85세에 『죽어가는 자들의 고독』을 출간했다.

    게오르그 짐멜은 대학에 진입하긴 했지만 상당히 늦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도 대학에 진입하긴 했지만 너무 늦었다. 지식노동자들의 삶은 고달프다. 그렇다고 꼭 죽어서 승리자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선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삶은 고통과 궁핍을 더 요구할 뿐이다. 그러나 학자의 숙명은 학문이 지니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학에 팽배하고 있는 문화학 혹은 문화이론 연구는 이들이 기대했던 것들에 비해 어떠한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을까. 그들도 그들이 주장한 이론들이 과연 학문전반을 완전히 정복하길 바랐을까. 지식노동자들과 그들에 관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 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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