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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워진’ 저작, 수준과 역량 조화 이루지 못했다
‘두꺼워진’ 저작, 수준과 역량 조화 이루지 못했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3.29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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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학술출판, 양 늘었지만 질적 성장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단행본 저작이 줄고 있다는 출판계와 언론의 우려 속에 <교수신문>의 취재 결과 주요 학술출판사의 학술서 출판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의 두께도 점점 더 두꺼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적인 성장이 반드시 질적인 성장을 담보하느냐에 대해서는 우려섞인 시각이 확인됐다. 

현재 저서는 대학의 평가 대상이 아니거나 평가를 한다고 해도 전공학술저서로 범위가 제한돼 논문 두 편과 같은 점수로 적용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체 저서의 종수가 줄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될까. 실제 문학과지성, 아카넷, 창작과비평 등 학술출판사 열아홉 곳의 교수 저작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반적으로 학술서 출판이 줄고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대학출판부 여섯 곳의 학술서 출판도 감소세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신간 종수는 매년 늘고 있다(<표>참조). 교보문고의 인문, 역사분야 신간 종수는 2007년 5257종에서 2008년 5636종, 2009년에는 5759종이었다. 사회과학분야의 신간 종수는 2007년 1794종, 2008년 2106종, 2009년은 2447종이었다. 지난 3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저술이 늘고 있음에도 책의 퀄리티를 담보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는 데는 세 가지 문제가 도사려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는 “교수 저작 문제를 양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현재 논문 위주의 교수업적 평가 시스템이 수준 높은 저술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저서는 아예 평가 대상이 아니거나 평가를 한다고 해도 전공학술저서로 제한을 둔다.

인문·사회과학 출판 시장이 침체돼 있는 것도 문제다. 문학과지성사의 박지현 과장은 “책을 내도 손익분기점을 넘는 학술서가 줄고 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3천부를 찍었는데 지금은 천 5백부를 찍으면서도 출혈을 감내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세번째로 정부 지원이나 민간 지원으로 학술서를 집필하려는 연구자들이 많지만, 이들의 저술의욕을 담아낼 시스템이 부재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해도 단기지원 방식이 많아, 장기적 관점의 ‘모노그래프’를 생산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

한국연구재단의 논문 위주 평가 방식이 질좋은 저술을 오히려 후퇴시킨다는 시각이 출판계에 깔려 있다. 역사학 전문 출판사인 푸른역사의 박혜숙 대표는 한국연구재단 프로젝트를 위한 논문쓰기가 출판계의 성장 동력을 꺾었다고 통탄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역사학계에서도 연구결과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젊은 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진 프로젝트가 이들을 흡수하며 변화의 흐름이 꺾여버렸다”는 것이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 역시 같은 의견이다. “1997년 금융위기 때 많은 역사전공자들이 전임교수가 되는 길이 막혀버렸다고 판단했다. 대중서 쓰기로 연구의 방향을 전환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당시 ‘학진’이 학문후속세대지원 사업을 벌이자 인문저술의 르네상스는 열리기도 전에 닫혀버렸다.”

양질의 수준높은 저술을 찾기 어려운 시대적 환경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과 연구자들의 치열한 저술의욕과 역량이 제고돼야 한다는 진단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눈에 띄는 대가급 저자가 없고, 주요 담론마저 세분화됨에 따라 변화된 학술출판 지형에 대응하는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후마니타스의 안중철 편집장은 “다분화된 담론을 끌어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연구자들의 저작이 늘어야 질적 성장도 함께 기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성 확보와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두 방향성이 새로운 화두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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