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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부 찍는 연구자 없다” … 분화된 담론 주도할 역량이 문제다
“1천부 찍는 연구자 없다” … 분화된 담론 주도할 역량이 문제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3.29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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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학술서 두꺼워지고, 출판종수 늘었다지만

교보문고에 집계된 지난해 학술서적 총수는 전년도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책의 퀄리티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진제공: 교보문고

최근들어 학술서들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발행서적도 다소 증가추세다. 그런데도 ‘양질’의 저작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업적평가를 이유로 삼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출판시장 위축도 설명이 될 수 없다. 곳곳에서 ‘역량’ 강화를 주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저술,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지난해 『역사들이 속삭인다』(프로네시스, 2009)란 책을 냈던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는 억울한 일을 겪었다. 대학 측이 책에 대해 전공서적이 아니므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해서다. 문제는 제목이었다. 『역사들이 속삭인다』는 제목이 전공학술저서의 성격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문제로 업적평가 담당직원과 얼굴을 붉히느니 차라리 평가점수를 포기하는 걸 선택했다.

서강대는 최근 2010년 전임교원 업적평가 시행세칙을 개정하며 인문사회, 경상계열 소속의 평가 저서 범위를 ‘전공학술저서’로 축소했다. 저서의 범위가 워낙 넓다보니 객관적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 ‘평가’의 특성상 저서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각 전공의 교수 업적을 평가한 후 승진과 임용을 결정해야 하는 대학의 입장에서 양적인 평가는 ‘최선의 차선’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움직임은 분명 시사적이다. 학술저작의 무게를 인정해야 한다는 근본적 주문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학문특성 맞는 평가 기준  마련 시급
정일준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대학의 단행본 업적 평가를 학술지 논문 평가와 다르게 마련하는 작업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논문 편수와 저서의 편수를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저작 한 권을 써서 인접 분야의 학자나 독자에게 인정받는 일이 논문 한두 편을 쓰는 일과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정 교수와 같은 생각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논문이든 저서든 ‘편수’로 정량화해 평가하는 방식은 연구의 질적 성장을 위협할 수 있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가 지적하는 것도 이 점이다. “한국연구재단의 평가 기준은 인문·사회과학의 학문 특성과 맞지 않다. 한국 연구재단은 1, 2년의 단기적인 연구 결과를 평가한다. 연구 결과가 바로 소비되는 자연과학의 연구 패턴을 무분별하게 적용한 결과다”라고 지적하면서 강 교수는 “한권의 저서에 평생을 바쳐 대작을 남기기도 하는 인문·사회과학을 어떻게 평가할지 새로운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긴 있지만, 지원 규모만큼이나 ‘압박감’을 저자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에서 한국연구재단지원으로 총서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홍준기 교수(철학)는 “재단의 안정된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시간에 맞춰 총서를 내야하는 것”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렇게 시일에 맞춰 ‘생산’해야 하는 주문형 저작을 보는 출판계의 시선은 곱지않다. 정부 지원을 받은 것과, 저작의 완성도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의 박지현 과장은 “책은 독자와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데, 논문을 묶어낸 책이 독자에게 통할리가 없다.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결과라도 논문 묶음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논문 중심의 평가방식이 가진 모순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이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편집자들은 학계와 연구자들의 역량에 회의적이다. 책세상의 김미정 편집장은 “과거에 비해 학문 전체를 아울러 책 한 권을 진행할 만한 교수들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고 운을 떼면서 “그때그때 시의성 있는 주제에 의견을 피력하는 연구자는 많지만 오랜 기간 특정 주제에 천착해 학문적 성과를 내는 연구자는 많지 않다”라고 정곡을 찌른다. 푸른역사의 박혜숙 대표는 “과거 강만길 교수가 한 사석에서 인문서로 한 해 1만권을 팔 수 있는 학자가 몇이나 되느냐고 한국 지성계를 비판한 적이 있다. 지금은 1만권은커녕 1천부를 찍는 연구자도 드물다”며, “논문식 글쓰기는 학자들만의 언어다. 대중과 사회에 환원되지 못하는 지식”을 불신하고 있다.

저자들, 새로운 글쓰기 모색 필요
그러나 출판계의 시각이 모두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논문을 중요하게 쳐주는 대학 관행의 문제점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학술서 위축’이 아닌 ‘증가’로 받아들이고 있는 시선도 있다. 창작과비평의 강영규 과장은 독자층의 다변화에 주목한다. “80~90년대엔 인문·사회과학서의 소비가 일부 지식인 계층에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매체가 다변화되고 인문, 사회과학서가 예전의 딱딱한 틀을 벗어나 다양화되다 보니 일반 독자들의 독서경험 자체가 넓어지며 학술저서의 소비도 늘어나게 됐다.” 후마니타스의 안중철 편집장 역시 이런 입장에 동의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안 편집장은 다변화된 담론 주도층이 형성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과거에는 큰 학자가 거대 담론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학계의 논의가 상대적으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사회가 다변화된 만큼 담론 자체가 여러 방면으로 세분화됐다. 이 담론을 끌어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연구자들의 저작이 늘어야 질적인 성장도 같이할 것이다”고 강조한다.

교수들의 저작 출판은 연구 성과를 통해 일반 독자와 소통하는 것에 방점이 있다. 물론 전문적인 학문 공동체 내부의 소통을 위한 용도도 부인할 수 없다. 출판시장 역시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독자와의 소통을 겨냥하지 않을 수 없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는 “논문 중심의 학교 글쓰기에만 몰입하다보니 자기 전공 분야 외에 인접 분야의 연구자나 대중에게 읽힐 수 있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며 대중의 경향에 맞는 글쓰기 훈련이 연구자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역시 “교수들의 저작이 어떻게 하면 출판시장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지에 고민이 모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판 시장의 보상이 동기부여가 된다면 인문·사회과학 저술은 활발하게 이어질 수 있다. 저작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학계와 출판계 모두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모색할 때다.”

새로운 글쓰기의 모색과 더불어 연구자 스스로의 돌파구 마련도 중요한 문제다. 비록 한국연구재단이 ‘인문저술지원사업’을 2007년부터 신설해 시행에 들어갔고, 올해부터 ‘저술성과확산지원’을 신규 추진하긴 하지만, 돈 나오는 정부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강명관 교수는 인문·사회과학자의 저술 활동이 지나치게 외부의 재정적 지원에 기대는 것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자료 발굴에 큰 예산이 필요한 몇몇 연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저술활동에는 예산이 우선하지 않다. 연구비부터 따내고 보자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니 질보다 연구비 집행 등 외적인 요소에 공력을 낭비한다.” 

김기봉 교수는 인문·사회과학자에게 저작이 왜 중요한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지금은 전자매체를 토대로 의사소통 체계의 재구술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근대식 문어체에 갇혀 학문의 영역에서 저작을 내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한다.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연구자들의 저작을 지원하되 성과의 기간에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문의 특성에 관계없이 단기적 성과를 일괄적으로 요구하는 우리 대학의 평가풍토와  느슨한 저술의식이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두꺼운 책들의 홍수 속에서도 괄목할만한 ‘모노그래프’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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