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5:00 (일)
[딸깍발이] 인문학의 국제화라는 질문
[딸깍발이] 인문학의 국제화라는 질문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 승인 2010.03.15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지난 십 수 년 동안 ‘인문학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들이 드높더니, 어느새 상황이 변해 이제는 ‘인문학의 전성시대’를 예견할 만큼 도처에서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인문서적 출간이 넘쳐나고 있고, 기업의 총수로부터 인문계 졸업자를 확대 채용하라는 공개적 지시가 있는가 하면, 인문 CEO 특강이나 시민인문강좌며 심지어는 교도소의 교화과정에서도 인문강좌가 특효가 있는 것으로 여길 정도이니 가히 인문학의 전성시대가 아닌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에서 근대화, 산업화, 서구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서구에서 전래된 기능주의적 지식과 학문체계, 즉 순수학문보다는 응용학문의 범주에 속하는 실천적 지식의 확대가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근본적 가치문제에 대한 성찰이나 고매한 예술적 심미안보다는 산업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요구되는 실용적 지식의 습득이 급선무였으니, 대학과 사회에서도 인문학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것이 국민경제가 선진국의 문턱을 넘나드는 이즈음, 인문학을 대하는 태도에서 급속하지만 바람직한 반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은 삶의 물질적 풍요를 넘어선 삶의 질에 대한 의문과 추구가 시작되고 있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필수조건으로서 인간과 환경 및 역사와 문화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입각한 경제 정책과 사회 인프라의 확보가 급선무로 등장한 것이다. 이른바 산업화 시대의 물적 자본에 기초한 硬性 권력으로부터 정보화, 다양화 시대의 정신적 자본에 기초한 軟性 권력으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인문학은 古來로부터 가지고 있었던 그 효용가치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본시 인문학은, 보다 정확히 말해 ‘인문적 소양’은 동서를 막론하고 한 사회 최상부로의 신분상승을 위한 결정적이고 유일한 수단이었다. 전쟁으로 점철된 부족과 국가 간 경쟁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생산력과 군사력이었지만, 그렇게 성공한 왕국이나 제국이 안정적이고 항구적인 시스템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재조직하는 것이 필수요건이었다. 이에 따라 종교적 사제 계급과 함께 국가의 정신적 인프라를 담지한 세력으로서 인문소양으로 무장한 지식인 관료체제의 수립이 한 제국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건이 된 것이다.

    서양의 경우 이러한 지식은 대학의 발생과 함께 체계화돼, 중세에는 문법, 수사, 논리라는 3과의 기본적 인문소양이 필수 교과목으로 전수됐다. 근대에 들어서는 인문학의 소양을 축적한 집단이 절대왕조의 관료층으로 군림했고, 시민혁명 후에는 부르주아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이들에게 교양인의 이상은 도전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지배의 수단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 文·史·哲이 한 몸이라는 인문소양이 온고지신의 원리아래 과거제를 통해 국가적 관료제도로서 실현됐다.

    동양과 서양에서 또 하나 공통된 중요한 인문적 요소가 있는데, 이 점이 최근의 인문학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는 것 같아서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국제적 소양이다. 서양이나 중국의 귀족 자제들에게는 성인이 되기 이전에 시종들을 붙여서 값비싼 해외유람이 교양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 교과목 같은 것이었다. 이들에게 몇 가지씩의 국제 언어와 폭넓은 고전에 대한 교육이 이미 마쳐진 상태였음은 물론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감각적으로 이를 인지하고 자발적으로 국제언어 소양과 국제문화 체험의 소양을 쌓는데 대단히 열성적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학의 체제 안에서는 한편으로는 국제화 교육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이를 위한 체계적 교육과정을 점검하고 변화시키는 노력이 미흡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대학들은 과거의 고식적인 학제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국제화 필요성에 응답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