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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지구가 쓴 일기장
[學而思] 지구가 쓴 일기장
  • 황상구 안동대·지질학
  • 승인 2010.03.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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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구 안동대·지질학

지구는 지독한 기록광이어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낱낱이 기록한다. 하지만 지구는 우리 인간처럼 편리한 노트나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암석’이라는 훌륭한 매체를 사용해,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억 년동안의 그 기록을 보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은 암석이기 때문이다.
 

   이 암석은 지구가 탄생하면서부터 암석 자신의 생성과 나이, 지각운동, 환경변화, 생물권의 진화 등 다양한 측면의 지구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지구환경 변화의 일기장이고 기록보관소이며, 인류가 필요로 하는 여러 광물자원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암석 속에는 자신이 태어나게 된 원인과 나이, 자신의 변형에 관련된 구조, 당시 지구자기장, 화산, 지진, 재해, 운석 충돌, 기후 변화, 지표환경 변화, 해양의 변화, 당시 지구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이나 유해, 그리고 여러 광물자원 등에 관한 귀중한 정보들이 가득 들어있다. 지질학자들은 이 암석이라는 거대한 블랙박스를 해독해 지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아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암석은 오랜 지질시대를 통해 다양한 지질과정을 거치면서 암석이 본래 갖고 있던 정보가 없어지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지하의 정보는 현대과학이 만들어낸 여러 측정기기를 이용해 알아낸다.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통해 우리 뱃속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지구과학자들은 탄성파, 중자력, 지전류 등에 의한 탐사를 수행해 지구 내부의 구조나 자원 분포를 알아낸다. 하지만 이 경우에 실제 지하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아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지구내부의 암석을  직접 회수해 그 암석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암석을 다루는 암석학(petrology)은 지질학이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한 이후 수 세기 동안, 역사과학으로서 혹은 물질과학으로서의 지질학이 다루어온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응용과학으로서의 지질학이 인류의 삶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과학으로서 암석학 연구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환경 문제와 기후 변화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구환경 변화의 과정과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의 실마리는 과거 지구환경 변화의 기록 저장고라 할 수 있는 암석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암석학 연구를 통해 과거의 지각운동, 기후 변화, 지표환경 변화, 생물권의 진화 등을 밝힘으로써 지질학의 학문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런데 지질학은 현장에서 대학생을 지도하기에 너무 어려움이 많다. 왜냐하면 지질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야외에서 시공간적으로 너무 큰 것을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는 현미경을 통해 광물과 원소를 관찰하기 때문에 너무 작은 것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항시 짧은 시간에 작은 것으로부터 시공간적으로 큰 지질학적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야외지질학을 지도하면서 대학생들은 흔히 나무를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러 노두에서 암석 관찰을 통해 전체로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다. 이와 같이 개별적인 암석에 매달리는 일은 족보가 없는 돌멩이, 즉 迷兒石을 관찰하는 격이다. 또 반대로 암석을 이루는 구성인자의 정체를 밝히는 일 없이 지구 전체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예를 들면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변화를 겪은 암석에 대해 나이 측정은 전암분석으로 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암석을 이루는 광물 하나 하나는 유구한 지질시대동안 변천의 기록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작은 것의 정체를 통해 큰 결과를 얻어야 함과 동시에 큰 테두리를 파악한 연후에 작은 구성인자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결국 구성인자(소)는 시공적 전체(대)를 위해 있고 대는 소를 위해 있어야 한다. 지질학의 탐구과정은 공자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즉 전자는 學而不思則罔이고, 후자는 思而不學則殆와 같다. 암석 속의 엉클어진 기록을 읽어냈지만 전체를 생각하지 않으면 망나니 같고, 전체를 상상하면서도 암석 속의 기록을 읽어내지 못하면 게으름뱅이와 같다.

    다시 말하면 암석 속의 기록을 잘 읽으려면 암석 순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과정을 잘 배워야 하고, 전체를 잘유추하려면 풍부한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이러한 연관적인 바탕 위에서 야외에서 암석 속의 수많은 기록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고 과거 지구환경 변화의 과정과 역사를 올바르게 밝힐 수 있으며 미래 지구환경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상구 안동대·지질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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