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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不通卽痛
[신년사] 不通卽痛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경기대 명예교수
  • 승인 2009.12.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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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경기대 명예교수

‘不通卽痛’이란 말은 동의보감에 실려 있는 ‘通卽不痛 不通卽痛’에서 유래합니다. 우리 몸의 순환계가 제대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는 뜻이지요. 경인년 새해 첫날, 이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庚寅年 올 한 해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4대江, 세종시 문제가 해를 넘겨 상반기까지 논란을 뿌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4월에는 4·19혁명 50주년, 6월에는 6·25 60주년, 8월에는 경술 한일강제합방 100주년 등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가르쳐야 할 역사가 기억의 문을 두드립니다. 

대학에도 거센 바람이 불 것으로 보입니다. 8곳의 사립대가 지난해말 경영부실 판정을 받았습니다.  대학 구조조정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사립대에서 만지작거리던 교원 성과급제를 국립대에 도입하겠다는 정부측 제안도 교수들과 대학간의 경쟁을 더욱 닥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가야할 길의 일정은 빽빽하고, 해를 넘겨서도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국가적 의제가 많은 새해이다보니 새삼 저 ‘不通卽痛’이란 단어가 새벽 강물의 얼음장 깨지는 소리처럼 또렷하게 여운을 던지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 한국사회를 ‘관계지향의 사회’라고 부릅니다. 유교적 가치관의 기둥이랄 수 있는 ‘삼강오륜’에 이런 특징이 잘 반영돼 있는 것 같습니다. 유교적 실천윤리였던 삼강(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과 오륜(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은 상하관계적 질서의 확립을 통해 봉건적 신분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통치이념으로 기능했습니다. 비록 이것들이 과거 전통시대의 유물이긴 하나,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숙이 가치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바로 이 실천 윤리들이 ‘관계’의 위상학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君은 臣과, 父는 子와, 夫는 婦와 서로 관계 맺고 있습니다. 이 관계맺음을 ‘疏通’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하기에 이들 사이에는 義와 親과 別이라는 덕목이 강조됐던 것입니다. 의란 좁게는 ‘군신간의 바른 도리’에서 넓게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해야 할 바른 도리’를 의미합니다. 친과 별 역시 이 ‘의’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이 의란, 각각의 주체가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를 의지해서 올바른 길을 추구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더 깊은 불통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기주의와 극단적 당파심을 기반으로 한 정당 정치인들이 국민을 볼모로 국회의 고유 역할을 정상화하지 못함으로써 빚어진 것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모두가 ‘소통’ 부재로 인한 갈등과 아픔을 무수하게 겪어 왔습니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 광장은 눈에 보이는 ‘단절’의 대명사가 됐으며, 그와 함께 우리들 마음에도 견고한 불신의 벽들이 쌓여갔습니다.

 
2009년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삶과 죽음의 의미, 상처를 보듬고 서로 사랑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 하나의 상징이었다면, 돌아보면 지난 한 해는 이 상징을 제대로 껴안지 못한, 우리 모두의 不通의 시절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정치권에서는 해를 넘겨서까지 ‘국민을 섬기는’ 정치다운 정치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위기에 이른 가정 해체가 끊이지 않으며,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가슴에 상처의 화살을 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대학사회의 불통도 여러 곳에서 아픔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아직도 대학 교수들을 강단에서 쫓아내는 비합리적 횡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득 니체의 싯구가 떠오릅니다. “언젠가는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말없이 쌓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구름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그는 노래했습니다. “많은 것을 가슴속에 말없이 쌓”을 수 있는 사람은 소통의 지혜를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소통을 거부하는 불통이 몸과 정신을 갉아먹는 痛이라면, 이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인 ‘通’은 우리 모두에게 마치 번개가 불을 지피듯 아름다운 밝은 빛을 가져오지 않을까요.

때마침 먼 중동에서 들려온 400억 달러 규모의 원전건설 수주 소식이 나라 경제에 소망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熱沙의 현지에서 땀 흘린 모든 관계자분들의 값진 노력이 결실을 거둔 것이지요. 경인년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밝은 희망으로 펼쳐져, 저 희망의 사자성어처럼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낮은 곳에서 높은 데까지 고루 아픔이 없는 소통의 시대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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