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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학문성적표
[딸깍발이] 학문성적표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 승인 2009.11.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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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850년에서 1900년 사이 우리의 학문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당시의 학문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후 세대에게는 어떤 기여를 했을까? 당시의 학문 상황 내지 발전결과를 요즘과 같은 업적위주로 환산해 본다면 당시의 학문성적표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필자가 일정한 기간을 설정해 이러한 질문을 나름대로 설정한 이유는 한 개인으로서의 의문과 우리의 학문적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필자는 이번 학기 문예학의 문학연구방법론을 강의하며 독일이 학문의 기본 개념을 정립하고 그것에 대해 논쟁이 활발했을 당시 우리의 상황은 어땠을까하고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필자가 특히 주목한 시기는 실증주의가 태동하고 개화했던 1850년에서 1900년 사이이다.   

    문예학의 입장에서 볼 때 독일의 실증주의 연구방법론은 19세기 중반 대학에서의 문헌학과 문학사적 방법론을 최초로 학문화시킨 정신사적 조류였다.

당시까지 대학에서의 학문적 전통은 전승하는 고전과 전범이 되는 작품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거나 문학을 역사적 대상물로 삼아 학문을 전수하는 것이 일반인이나 전문가들의 생각이었다.
    당시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였던 게르비누스나 그의 전임자들이 본인들의 연구결과를 본인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이념에 맞추도록 노력했다면, 실증주의 문학 연구방법론 자들은 그들이 작업해 얻은 결과물을 특정한 이념이나 목적에 구속받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영속적인 학문적 가치를 지니도록 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독일의 학문사에서 1850년까지를 ‘학문화되기 이전’ 혹은 ‘학문의 태동기’라고 본다면 1850년부터 1870년까지는 ‘학문을 향한 과도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870/80년 이후는 학문이 완전히 자리를 잡는 시기로 자리매김 된다. 드디어 실증주의의 마지막 단계에서 대학의 인문학 관련 교육은 전공으로써의 자율권 획득과 독립성을 유지하게 된다. 인문학이 학문으로써 위치를 확보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전공과목에 대한 학문의 자율권 획득과 독립성 유지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증주의 연구방법론은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정신사적 방법론에 강한 도전을 받게 된다. 1900년에서 1910년 사이에 실증주의 문학연구 방법론은 정신사적 방법론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더니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밀려나게 된다. 정신사적 연구방법론은 종래의 자연과학적 방법의 기초가 되는 관찰, 설명, 실험, 계산에 의한 정확성에 반대하면서 현실에서 얻은 체험을 해석하고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인생과 세계의 비밀을 풀려고 노력한 연구방법론이다. 그렇다면 조선 왕조의 후기에 해당하는 이 기간에 우리의 학문 활동은 어땠을까? 정신사적 방법론이 태동하던 1900년과 1910년 사이 우리의 정신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러한 말들은 우선 질문으로만 남겨두고 싶다.

    대신에 100년 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그래도 대략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우리의 의지로 서양식 의미의 학문을 하기 시작한 것은 8·15 광복 이후가 아닌가 싶다. 순박하나마 1950년까지를 ‘학문화되기 이전’ 혹은 ‘학문의 태동기’라고 본다면 1950년부터 1970년까지를 나름대로 ‘학문을 향한 과도기’에 해당된다고 치부해 볼 수 있다. 그리고 1970/80년 이후는 학문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것 이라는 전제하에 많은 인재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난 시기이다. 하지만 1980년 이후 학문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특히 ‘대학에서의 인문학 관련 교육은 전공으로써의 자율권 획득과 독립성을 유지’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2000년까지의 학문이 혹시 다른 조류에 의해 도전을 받고 새로운 학문적 논쟁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50년이나 100년이 지난 언제쯤인가 우리의 학문성적표가 공개되지 않을까 한다.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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