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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불심검문
[대학정론] 불심검문
  •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 승인 2009.11.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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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아직도 나라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크게 답답해할 것이다. 우리가 힘써 가꾸어온 나라가 그런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딱하게도 우리는 아직도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불심검문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2009년 11월 12일 11시 20분 쯤, 용산역 대합실에서 두 명의 경찰이 짝을 지어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붙들고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다. 전남대에 예정된 특강을 위해 광주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내가 대뜸 불심검문의 대상이 되면서, 내가 살아가는 나라를 새삼 새롭게 돌아보게 됐다.

그때 나와 경찰은 1970~80년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으로 서로 마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2009년을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와 경찰 모두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우리의 모습에 매우 민망해했다. 그런데 1970~80년대와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경찰이 휴대전화로써 경찰청정보망에 접속해 매우 신속하고 간편하게 불심검문을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단순히 불심검문에서 느꼈던 황당함과 불쾌함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를 검문한 경찰 또한 내가 이 글을 쓰도록 부추겼다. 진심에서인지 모르지만 그는 불심검문을 일로 삼아야 하는 경찰 또한 마찬가지로 괴롭다고 말하면서, 제발 높은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알아서, 무턱대고 불심검문을 하는 일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건성으로 해본 말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글을 써야 하는 나는 그것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경찰이 국민을 혐의자라도 되는 것처럼, 무턱대고 불심검문의 대상으로 삼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일을 찾지 못했다.

나를 검문한 두 경찰은 용산경찰서 한강로파출소(지구대?)에 소속된 경위였다. 경위라면 세칭 무궁화 하나로서, 파출소 소장에 해당하는 간부이다. 그런 간부 두 명이 짝을 지어서 한낮에 대합실을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붙들고 불심검문이나 하도록 시키는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조직이며, 그러한 경찰을 운영하는 나라 또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나라인가.

경찰이 국민을 혐의자처럼 여겨서 불쑥불쑥 불심검문을 한다면, 그 나라는 모든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불심검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이다. 그런 나라를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니 나라가 나라답게 되려면 지금과 같은 불심검문은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이 땅에서 지금껏 불심검문이 지속돼온 것은 공권력이 오래 동안 그것에 맛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경찰, 검찰, 정보 권력이 불심검문에 크게 재미를 붙여온 까닭에 국민의 권익을 아랑곳하지 않게 됐다. 이 때문에 공권력에서 불심검문은 매우 오래된 고질과 같아서 이에 관한 것은 단순히 경찰청장이나 법무장관이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이리저리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 지금과 같은 불심검문을 사라지게 하는 길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대통령이 스스로 앞장을 서서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지 못하도록 엄하게 다스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경찰에 맞서서 계속 싸워나감으로써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두 가지 길 가운데 어느 것이 더욱 빠르고 쉽게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점을 깊이 깨닫고 새기는 일만 남아 있다.

최봉영 논설위원 /한국항공대·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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