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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거버넌스는 타협이 아닌 ‘합의’로 가능하다
하천 거버넌스는 타협이 아닌 ‘합의’로 가능하다
  •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장
  • 승인 2009.11.0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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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을 위한 제언

‘톰 소여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위스키는 마시기 위한 것이지만, 물은 투쟁을 위한 것이다(Whisky's for drinking, water's for fighting over).’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커다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면서, 사회적 합의를 찾아가기 보다는 거의 모든 측면에서 갈등과 혼란만 커지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금까지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인정됐던 기본적인 원칙들까지 무시되면서 이러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살리기’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됐다.

‘우리는 지구의 강들을 살릴 수 있을까.’ 범지구적 차원에서 하천 살리기 운동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절절한 호소가 담겨있다. 사진은 동강의 모습이다.                           사진제공 : 뿌리와 이파리

『생명의 강(Rivers for Life)』은 마치 지금 ‘4대강 논란’ 속에 있는 우리사회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처럼 매우 우리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살리기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사항들이면서도 지금까지 4대강 살리기 사업 논란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핵심 주제들을, 물관리 선진국들의 가장 앞선 과학적 성과와 선구적인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강살리기의 교과서이다.

‘인간에게 건강한 강이 왜 필요한가? 강을 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21세기형 하천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바람직한 하천관리를 위한 기본 원칙은 무엇이고, 강을 살리기 위해서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등이 이 책의 저자들이 논하고자 하는 주요한 주제들이다.
 
21세기형 하천 관리의 패러다임
이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제 1장에서는 20세기의 전통적인 하천 관리 정책의 문제점과 21세기형 하천 관리의 패러다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20세기는 하천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통제의 시대였다.

 

 특히 세계적인 대불황 극복을 위한 뉴딜사업과 함께 시작된 하천개조 사업들은 1950년대부터는 지구상에 날마다 대형 댐이 두 개씩 건설될 정도로 전성기를 맞은 치수·이수사업의 시대였다. 그러나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 같았던 하천개조 사업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한 생태학적 손실을 초래하게 됐다. 대대적인 하천 변형에 의해, 건강한 강이 수백만 년 동안 제공해왔던 ‘생태계 서비스’(습지만 따져도 1헥타르당 연간 2만 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가 손상되고 만 것이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이 돼서야 인간들은 이러한 손실을 깨닫고 다양한 하천복원의 노력들을 시작하게 됐다. 하천관리에서 ‘지속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수자원 개발은 미래세대가 누려야할 하천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재 인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개발이다. 저자들은 이제 하천관리에서 수자원 개발과 하천 변경의 한계선인 ‘지속가능성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2장의 주제는 21세기형 하천관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하천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제기로 시작하는 이 장은 우리나라의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에 이론적 측면의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식 하천관리에서는 강에는 항상 일정한 수심의 물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인간을 위한 강의 이용이라는 관점에서만 볼 때, 안정적인 수자원의 이용과 수운을 위한 수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하천유량이 변하지 않고 일정한 수심이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방식의 하천관리가 가진 문제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천에는 그 지역의 기후와 특성에 맞는 고유한 물 흐름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천의 유황이며, 하천 주변의 생태계와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하천 유량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하천과 더불어 살아왔다. 하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하천의 유량을 확보하고 수질을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천의 고유한 유황이 최대한 복원되고 보전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강살리기의 선진 사례

제3장과 제4장에서는 강살리기의 선도적인 국가들의 하천관리 정책의 핵심적인 내용들과 주요한 하천복원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호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물이용에 대한 새로운 원칙들은 매우 흥미롭고 다른 자원의 관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장들에 제시돼있는 여러 하천의 사례들은 2003년을 가장 최근의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인터넷 등을 통해서 최근의 동향들과 비교해 보면 하천 살리기의 노력들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발전해 가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미주리강과 그린강의 사례들은 독자에 따라 얻는 바가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4대강 사업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물 거버넌스와 적응 관리


제5장의 주제는 물거버넌스와 적응관리이다. 이 장에서 저자들은 하천관리를 둘러싼 개발과 환경의 갈등이 어떻게 서로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책입안자, 댐관리자, 수리수문 전문가, 생태학자, 환경단체활동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인간의 물이용 욕구와 하천의 건강성 회복이라는 현재로서는 좀처럼 양립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가치들을 동시에 추구해가는 과정들은 바로 이 책의 부제인 인간과 환경을 위한 강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하천 거버넌스는 타협이 아니라 합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지적은 지금의 우리 사회를 두고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우리는 지구의 강들을 살릴 수 있을까’라는 사뭇 도전적인 제목인데, 이는 범지구적 차원에서 하천 살리기 운동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절절한 호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의 원본이나 일본어 번역본 등을 찾아보면, 수자원 관리와 물 정책 분야의 기본서 분야로 분류돼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점과 서평에서는 정치와 사회 분야의 책으로 소개되고 있는 점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든 이 책이 하천 살리기에 관심을 가진 많은 분들에게 치열한 현안의 논의에서 잠시 한 발짝 떨어져서 조금 더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동진 국토환경연구소장

『생명의 강』을 번역했다. 국토연구원 연구원, 대통령자문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지냈다. 물 관리 정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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