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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가슴 때리는 옛 가르침
[學而思]가슴 때리는 옛 가르침
  • 송순재 감리교신학대·교육철학
  • 승인 2009.11.0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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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프로가 아니다. 그들은 현장을 낯설어 하고 현장을 모른다. 프로는 현실적인 문제와 투쟁하고 씨름해 이를 피와 땀의 결정체로 빚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프로다.” 오래 전 작고한 국내의 어떤 유력한 사업가의 잠언록 중 한 대목을 다른 말로 풀어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을 ‘프로’로 인식했고 또 자신의 말대로 자신의 사업을 일구면서 이 일과 우리 사회를 위해 자기 몸을 던졌다.

    매우 인상 깊게 들었던 이 말을 나는 나 자신의 학문영역과 관련지으면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부분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공감한다 함은 교수들의 이론적 작업이 현실과는 상당부분 동떨어져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 외국 이론을 그대로 옮겨놓거나 답습하기에 급급한 반면, 우리 현실과 생산적으로 논쟁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의 이론은 폐부를 찌르지 못하고 가냘프고 파리하다.

“교수들은 좋은 수업에 ‘대한’ 이론에는 빠삭하지만 실제 교실 수업에서 학생들을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학생들의 비판이다.
    하지만 그러한 세평 중 어떤 부분에는 유보적이다. 이를테면 이론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현장의 요구를 절대시 한 나머지 이론의 ‘고유한’ 영역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론이 제 아무리 현실과 긴밀히 연관 맺는다해도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실에 대한 성찰이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있을 자리는 없다.

    대학교수는 ‘현실주의자’가 아니다. “종교다원론적 내지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은 교회를 허무는 신학으로 이런 신학자는 법정에 세워야 한다.” 혹은 “진화론 같은 이설을 두둔하고 가르치는 신학자는 위험하기 짝이 없으므로 퇴출시켜야 한다.” 나아가서 “그 교수는 색깔이 의심스럽다”는 등 현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이런 저런 주장들에 대해 신학이론이 맹목적으로 봉사해야 할 의무는 없다. 대학은 일종의 실험실로서 실험이 이뤄지는 동안에 논의되는 다양한 이론적 가능성을 위한 학문의 자유는 십분 보장돼야 한다.
현실을 위한 안목이 요청된다면 이론을 생산하기 위한 자유도 요청된다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에는 몇몇 학생들로부터 지난 몇 년간 들어 보지 못했던 따끔한 충고도 듣는다. “선생님들께서는 우리 사회를 위해 발언해야 할 때 왜 침묵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 질문에는 자못 심각한 무게가 느껴진다. 자기 선생들에 대한 그러한 회의적 물음에는 “우리는 당신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요즈음 학생들은 사회참여적이지 않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달콤함을 좇아 전전한다는교수들 사이의 평이 있다. 하지만 교수들 자신은 어떤가. “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 있으며 자족적인 삶에 연연하지 않는가.

그들도 이해 타산적이며, 권력 지향적이다. 그들도 다르지 않다. 히틀러 당시 대다수 교수들이 보인 태도도 그런 것이었다면, 이런 풍조는 어제 오늘의 일 만은 아니다. 교수라는 직업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라는 지적도 있다. 

   나는 이 지적을 부인할 생각이 없다. 어떤 점에서는 일정부분 그 혐의를 전문화된 지식 영역 안에 매몰시키는 근대 서구의 학문과 교육적 영향에 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자기가 추구하는 지식을 자기 ‘인격’과 결합시키지 못하는, 혹은 자기 ‘삶’의 문제로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교수양성과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나는 교수를 더 이상 파리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지식인’이라는 말로 부르지 말고 ‘학자’라고 불렀으면 한다. 우리 옛 전통에서 학자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로 배우고 묻고 탐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 뿐이다. 선인들은 학문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즉 인격으로 삶으로 하고자 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받았으며 또 목회자와 교사양성을 위해 현재 내가 수행하고 있는 신학과 교육학 수업에서 중대한 결함을 찾아냈다. 그것은 ‘마음공부’와 ‘몸’으로 ‘사는’ 법이 결여된 교육이다. 오늘의 사회를 향해서 책임 있게 살게 하고 미래를 향해서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옛 가르침이 내게 다시금 절실하다.

송순재 감리교신학대·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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