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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행복도시’는 있는가
[대학정론] ‘행복도시’는 있는가
  •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 승인 2009.11.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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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행복도시, 아니 세종시의 운명이 오락가락한다. 일은 2003년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지원단으로 추진되지만, 2005년 특별법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이라고 했다. 충남 연기-공주에 자리하기로 하고 천도는 아니니 ‘행정복합도시’가 됐다가, 2007년부터 ‘세종시’라는 명칭이 끼어들었다. 아들인지 딸인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정치적 계교이다.

국민들도 모두 그 도시의 성격에 관심이 휘둘리는데 원안 고수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느니, 하기는 하는데 (개발 투자를 더 해서라도) 정부 이전은 최소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어느 현대 도시가 프로그램도 정하지 않고, 도시부터 만들고, 거기에 기능을 주워 담는다는 말인가. 그것을 집이라고 하자. 누가 살며 무엇을 위해 짓는지 모르는 집을 짓지는 않는다.

이 도시계획은 2006년 국제설계경기에서 스페인의 건축가 안드레 뻬레아(Andres Perea)의 안을 당선시켜 추진돼 온 것이다. 2007년 당선작으로 소개된 그의 도시 개념은 아주 독창적인 것이다. 보통 도시는 중심이 꽉 차고 외곽이 느슨한 것이 상념이다. 그는 이를 뒤집어 생각한다. 중심을 모두 자연으로 비우고 외곽을 도시공간으로 쓰니 도넛 모양으로 도시가 그려진다. 그야말로 생태적이며 자연친화의 도시이다. 도시의 어느 위치에서도 20분 안에 녹지공간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 이 도시는 어떻게 더 아름답고 인간적이며 자연친화로 환경을 디자인하느냐의 문제는 관심 밖이 됐다. 단지 정치가 쥐고 흔드는 데로 시선이 휘둘릴 뿐이다. 행복도시의 도넛 형 공간개념은 몇 번의 딴지가 걸린다. 한 풍수가가 도시가 허하니 안을 채워야 한다는 게다. 도넛처럼 생긴 환상형은 氣가 흩어지고 나쁜 기운이 안에 고인다는 것이다. 도시는 원수봉과 전월산이라는 나즈막한 산을 主山처럼 하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행복도시의 계획에서 안산이 주산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행정복합도시건설청은 이를 받아들인 모양이다. 서쪽으로 4.5km 떨어진 국사봉을 주산으로 삼기 위해 전체 배치를 이동시켰단다. 비워질 도심 중앙부에는 대형 조형물을 설치해 기의 균형을 잡는다. 기가 너무 세거나 나쁜 곳에는 기능을 배분하지 않았다. 이런 정부 당국의 의도를 반영한 모양으로 국토계획연구원에서 실시설계가 2007년 7월 확정됐다. 당초 A.뻬레아의 계획에 비해 뚱뚱해진 도넛이 됐으니 꽤 답답해 졌다.

현 정부에 들어서 전임 정부의 생각을 뒤집는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느니, 더 잘해 주면 되지 않느냐는 등 여당 안에서도 정리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문화 또는 도시의 정치적 프로퍼갠더는 지난 한국의 근대사에서 허다한 사실이어서 이미 익숙하다. 사법부도 그렇다. 2004년 헌법재판이 판결하기를 ‘수도 이전’은 위헌이라고 했다. 수도 이전은 개헌절차(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2005년 헌재는 행정복합도시가 (천도가 아니라면) 위헌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판관 9인 중 2인은 세종시를 ‘수도 분할’로 보았다. 국무총리와 12부 4처가 이전한다면 사실상 천도이거나 또다른 수도를 만드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우리는 그 재판관들 마저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이제 이전 부처는 9부 2처 2청으로 축소됐지만, 정부가 가기 싫은 마음은 여전하다. 물론 우리의 일상에서 번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건축설계에서도 곧잘 ‘설계변경’이 이루어지는데 대개 두 가지 이유이다. 하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더 나은 대안을 발견하고 가능하다면 바꾸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공사업자가 공사비를 착복하기 위해 내용을 부풀리는 일이다.

우리의 행복도시 또는 세종시의 뒤틀리는 팔자가 수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든 힘을 아름다운 도시 만들기로 되돌려야 한다.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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