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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전공 이해없이 통합과 융합 가능할까
타 전공 이해없이 통합과 융합 가능할까
  • 신정철 서울대·교육학과
  • 승인 2009.10.26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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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_ 지식융합, 분과학문간 차이부터 이해하자

대학교수들은 분과학문 간에 학문적 지식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사고의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경험한다. 예를 들면, 각 단과대학의 대표들로 구성된 위원회 활동을 하는 경우, 위원들 간에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상당히 큰 의견차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인을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이 되는 ‘주제’ 자체에 대한 의견차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그 문제를 합의해 가는 ‘과정’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도달한 ‘결론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개인차에 기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은 각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분과학문 배경에 기인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학문영역간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은 분과학문간 높은 장벽을 헐고 상호간에 교류의 폭을 넓혀 지식의 융합과 학제적 연구에 이론적 실천적 밑바탕이 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8년 ‘세계 대학교수에 대한 국제비교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에 근거했다.

우선, 자연과학·공학·의학 계열(hard discipline)은 비교적 단일의 학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고, 지식에 대한 학자들의 공감대가 비교적 넓다. 지식의 회전주기도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연구에 있어서도 최신의 연구결과를 많이 인용할수록 좋은 논문으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연구방식도 하나의 주제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연구한 후 나중에 통합하는 역할 분담식 연구가 많다. 교육과 연구 중에서 연구에 보다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교육방법도 주어진 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측면에 역점을 둔다.

이에 비해 인문·사회계열(soft-discipline)은 복수의 패러다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학자들이 옳다고 믿는 지식에 대한 공감대가 비교적 넓지 않고, 동일한 사회현상에 대해 하나 이상의 지식이 존재하며, 지식의 상대성에 대한 믿음이 크다. 따라서 지식을 생산하는 방법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한 지식의 회전주기도 상대적으로 길며, 논문은 비단 최근의 연구결과 뿐만 아니라 과거의 고전적 연구결과를 함께 소개해야 수준이 높은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학자들의 학문연구는 팀별 연구보다는 개별적인 연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교육에도 많은 비중을 할애하며 다양한 교수법을 선호한다.

학제간 연구 혹은 지식의 통합은 서로 다른 학문분야에 속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하지 않고는 힘들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만 하지, 서로 다른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이 만나서 겪게 되는 의사소통의 장애를 비롯한 학문영역간의 차이점은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학제간 연구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서로 다름에 대한 공통된 이해이다. 만약,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력연구를 진행한다면, 그 만큼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배려 없이 진행된 수많은 학제간 연구(연구비 수주 등)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학문영역간의 차이를 간과한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타 학문분야에 대한 이해는 학제간 연구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행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공학계열 교수들은 연구성과를 구체적으로 계량화해 각종 인사행정의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은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차이는 교수 개인의 특성뿐만 아니라 학문분야별 특성에서 기인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따라서 이러한 요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은 대학의 의사결정은 대학 구성원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심화되고, 결국 상호간의 불신은 학문간 통합과 학제적 연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지난 10월 23일부터 이틀간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지식융합의 과제: 분과학문간 차이점에 대한 이해’를 요약한 것입니다.

신정철 서울대·교육학과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등교육과 교육정책을 전공했다. 교육부에서 서기관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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