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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原語 강의, 그 산을 넘으려면
[딸깍발이] 原語 강의, 그 산을 넘으려면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 승인 2009.10.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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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자식을 앞에 두고 “나는 평생을 살며 그것을 이룩하지 못했으니, 너는 꼭 그것을 해내라!”라는 강요식의 말과, 자신의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이 어떠한 문제로 인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라고 자상하게 말해 준다면, 어느 말이 앞날을 살아가는 자식에게 더 유용할까.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했을 때, “그것도 이해하지 못했느냐?”며 질책으로 일관하는 것과,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해법을 동원해 학생과 함께 공동으로 노력한다면 어떠한 것이 더 교육적으로 효과적일까.

    지난 몇 년 동안 원어강의에 직접 참가한 강의자의 한 사람으로서 외국어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들을 접하게 되면 항상 위와 같은 비유들이 떠오르곤 했다. 필자가 강의하는 대학에서 교양외국어에 대한 원어 강의가 처음으로 시행됐을 때, 그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외국어강의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약 5년이 흐른 지금에도 원어강의는 계속되고 있고, 그 강의에 참여한 강의자나 수강자들 사이에서 불만족이나 커다란 잡음의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원어강의는 과연 가능할까.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는 것이 원어강의에 대한 정당성 확보나 부당함을 지적하는 분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원어강의라 함은 영어가 아니라 소위 제2외국어로 분류되는 독일어만을 한정한다.

    필자가 굳이 영어강의와 독일어 강의를 분리시켜 말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외국어 강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강의를 떠올리는데, 영어강의에 대한 논의는 순수한 교육이나 학문적인 효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현대사회와 관련된 실용적인 측면을 위해 설정된 것이 대부분이다. 둘째로 영어는 배우는 학생들이 오랫동안 접해온 친숙한 언어인데 반해 독일어는 대부분 초보이거나 처음 접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영어와 독일어는 우리나라의 인문학이나 문화발전에 끼친 영향은 물론 필요성에 있어서도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넷째로 영어도 어렵겠지만 독일어는 쉽지 않은 언어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독일어를 영어처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어려운 언어이기 때문에 한국어로 강의해도 무방한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한다.   

    교양독일어에 대한 원어강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첫 번째 주어진 과제는 ‘원어강의를 과연 어떻게 진행시켜야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원어강의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강의자 혼자 독백하는 것이 아니라 수강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진행돼야 하는 것이 철칙이었다. 처음부터 100% 원어강의가 진행될 수는 없었지만 곧 80%, 90%를 거쳐 서서히 100% 문턱까지 접근 할 수 있었다. 둘째로 100%에 접근하는 원어교수법 강의방법 개발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문법체계와 전문용어를 학생들에게 각인시켜 문장기능 파악을 위한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원어강의가 필수가 아닌 ‘독소설’이나‘독시’도 원어강의를 응용해 보았다. ‘독소설’의 경우, 처음부터 카프카의 <변신>등 어려운 텍스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출판사에서 어학 교육용으로 출간한 소설을 다루었는데 교양독일어에서처럼 큰 무리가 없었다. ‘독시’의 경우도 원어강의 방법을 통한 한글 번역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원어강의 시도는 큰 무리가 없었다.

    한국인이 원어강의를 한다는 것은 물론 한계가 있다. 그러나 외국어에 대해 한계를 느낀다는 말은 원어로 소통을 시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외국 문화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위해서는 꼭 넘어야 할 산이 아닌가 한다. 그러할 때만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까.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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