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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市場과 戰場
[문화비평] 市場과 戰場
  •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 승인 2009.10.1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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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2009년 8월, 한국과 인도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에 공식적으로 서명함으로써 양국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수교 36년만의 큰 진전이다. 하나의 국가이지만 수많은 문화와 사회의 집합체, 러시아와 영국을 뺀 유럽 대륙과 비슷한 영토대국, 인구의 감소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우리와 달리 머지않아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인도와의 이번 ‘악수’는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거대시장의 탄생으로만 여길 사안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깊이 연계되는 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2003년 ‘드리밍 위드 브릭스’(Dreaming with BRICs)를 펴낸 골드만삭스가 인도가 앞으로 30~50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할 잠재력을 가졌다고 전망한 이래, 인도는 친디아(Chindia)로도 불리며 경제성장에 가속도를 보이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과 더불어 국제문제의 결정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펴기 시작했고, 9월 말 개최된 피츠버그 G-20 정상회의에서 발언권과 국제기구에서 입지를 확대하며 이러한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앞으로는 G8이 아니라 인도를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경제질서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재계와 관계 등 우리나라 관련분야에서는 인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사실은 양국 간의 수평적인 장기적 경제협력보다 우리나라가 인구 12억의 거대시장에서 추수할 일방적인 단기이익에 대한 계산이 치열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지만. 관련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초에 발효될 한국과 인도의 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으로 인도에 대한 수출은 10년간 연평균 1억 7천700만 달러씩 늘어나고 인도로부터의 수입은 연 3천700만 달러씩 증가한다.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을 폄하할 의도는 없으나 인도를 오랫동안 공부한 내가 이 시점에서 제안하는 건 인도를 일방적으로 이익을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인도는 우리가 맘대로 이익을 추수하도록 허용할 만큼, 외부세계의 돈과 상품에 쉬이 마음을 내줄 만큼 무력하지 않다. 치열한 무역전쟁의 장에서 상대를 얕보면 이미 패배한 것인지도 모른다. 역동성과 미래를 가진 주체로서의 인도, 우리의 파트너로서 인정하면서 관계의 변화에 긴밀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인도는 낮게 평가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지금도 과학과 합리성이 작동되지 않는 후진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요가와 명상에 치중하면서 정치나 경제엔 관심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는 종교적 나라로도 여겨진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서 온 사람들도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국내 대학에 근무하는 한 인도인 교수가 인종차별을 받은 사례는 그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인식과 선입견 탓이다.인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곳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건 모순이다.

    이런 점에서 아쉬운 건 제대로 인도를 ‘말할 수 있는’ 학자와 전문가의 부족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는 각계각층에서 눈부신 변화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으나 인도를 전공한 학자와 전문가의 수는 ‘아주 오랫동안’ 불변하고 있다. 특히 학계는 이러한 변화의 무풍지대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내 전공인 역사분야를 보아도 열악한 현실이 분명해진다. 현재 연구재단에 등재된 인도사 연구자는 겨우 4명이고, 외국어대학의 관련학과를 제외하고 부정기적 특강을 포함해 인도사 강좌가 개설된 곳은 전국에 2~3개 대학에 불과하다. 다른 연구 분야도 대동소이하다. 인도의 중요성에 대한 ‘말’은 많지만‘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인력의 태부족은 조만간 국내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이번 협정으로 우리의 시장도 인도에게 개방되고, 특히 인도의 전문 인력이 수입된다. 컴퓨터 전문가, 엔지니어, 경영 컨설턴트, 영어보조교사 등 163개 분야의 전문 인력이 1년 미만의 단기 취업비자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

인도는 이미 이 분야의 한국시장을 공략하려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복잡한 국제정세에서도 날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인도를 잘 아는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일은 늦긴했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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