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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영어강의’를 비쳐볼 거울
[딸깍발이] ‘영어강의’를 비쳐볼 거울
  •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 승인 2009.10.1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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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에 ‘영어강의’가 화두이다. 이전에 ‘원어강의’라 해서 영어 외의 외국어도 이에 포함돼 있었다. 그때 한국어를 ‘원어’로 볼 건가 말 건가의 논란이 일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대학 내에 영어가 외국어 중 왕좌를 차지한 건 기정사실이다. 세련된, 앞서가는 대학임을 주장하려면 영어강의 비율을 상향조정해 높은 국제화 지표를 과시해야 한다. 이렇듯 영어강의는 우리 대학들이 새로운 자기정체성을 만들고 대외 경쟁력을 높이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수도권 비수도권을 막론하고 대다수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적극 ‘권장’하는 추세다. 하지만 언젠가 ‘권장’에서 ‘강요’나 ‘의무’로 바뀔 것이다.

    대학 사회에서 자신의 학술·지식을 학생들에게 영어로 강의할 능력을 온전히 갖춘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리라. 따라서 영어강의에 익숙하지 못한 다수의 교수들을 영어 강의로 전환시켜 가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뿐만 아니라 영어강의 자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과 시간도 필요하다. ‘대학이 변하려면 교수들이 변해야 하고, 교수들이 변해야만 학생들이 변한다.’는 논리가 곧바로 전공 영어강의 영역에 적용되기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그러나 모든 대학들이 무작정 느긋함과 느림을 미덕으로 버티기란 힘든 일. 입시 경쟁 등 대학경쟁력 강화가 폐쇄적이 아닌 대학정보공시제처럼 ‘투명하게 공개’되는 방식이라 당장의 평가를 대비해서라도 영어강의 수와 같은 국제화 지표를 높여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강의는 재래시장을 현대판 백화점으로 바꾸듯이 본질적으로 기존 대학의 틀을 세계화=미국화라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 속에 끼워 맞추는 일이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의 실용노선과 맞물린, 대학사회판 ‘적자생존론’의 양상이다.

앞으로 교수충원에서부터 전공교육에까지 영어강의가 ‘기본’으로 정착할 것이 필연적임을 예상한다면, 우리 대학들도 이제 찬반 논의와 같은 원론적 수준을 넘어 실제적인 대응에 고민하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무대책으로 끙끙 앓기보다는 각기 자신들의 ‘현재’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따른 합리적인 처방을 내리는 것이 대학이나 교수 자신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대학 측에서는 ‘왜 영어 강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갖고 그에 따른 홍보를 해야 한다. 다음으론 ‘어디까지, 어떻게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아젠다를 설정하고, 로드맵을 짜고, 강의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기존 강의와 영어강의 사이의 분명한 관계설정, 영어강의의 내용 확정, 영어강의 교재 개발 및 선정, 교수들의 개별적 능력 개발 등등 세밀한 논의와 실행이 따라야 한다.      

    교수들의 영어교수 능력 개발 또한 단시일엔 가능치 않다. 이미 주어진 연구년제를 탄력적으로 활용한다면 1~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자신의 역량 개발에 충분히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여가 시간 또한 교내에 개설된 외국어교육원 특설 영어강좌에서 정기적인 습득을 권장해가면 된다. 다만 대학 전체가 영어강의에 올인 할 각오를 할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교수들의 반발을 감내하면서라도 교수들의 영어강의 역량을 비교적 수월하게 업그레이드할 수가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영어강의는 무조건 긍정할 수도 무턱대고 부정만 할 수도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꼭 빠트려선 안 될 것은 학생과 교수와 대학이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차원에서 우리말 또는 영어강의를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기획·설계하는 기법을 찾고 언어, 문화 번역 감각을 극대화 하는 일이다. 예컨대 인도 등지의 외래 언어, 문화를 번역·통역하는 피땀 어린 역사를 통해 불교의 대장경이 우리 앞에 선진문화로서 도래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다시 ‘한글 번역’되고 있다. 영어강의는 과거 우리 지성사 속의 ‘번역’ 체험들을 거울삼을 필요가 있다.

최재목 편집기획위원 / 영남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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