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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장서실과 열람실 사이에서
[문화비평] 장서실과 열람실 사이에서
  • 김풍기 강원대/국어교육과
  • 승인 2009.10.12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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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이나 도서관 아침 풍경은 비슷하다. 새벽부터 무거운 가방을 든 학생들이 몰려오고, 1교시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도서관 열람실 좌석은 대부분 가득 찬다. 아예 같은 자리에 자신의 짐을 놓고 다니는 학생들 때문에 자리 독점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신 맡아주는 학생들 때문에 불평과 함께 빈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도서관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순서대로 와서 번호표를 뽑아 좌석을 배정 받는다든지 학기 초에 추첨을 해서 사물함을 받아서 사용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제도를 만들어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기회와 편의를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 많은 학생들은 왜 사서들이 출근하기 전부터 이렇게 장사진을 치면서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학생들은 도서관으로 간다기보다는 도서관 안에 있는 열람실로 가는 것이다. 열람실이라고는 하지만 그 역할은 독서실 수준의 공간이라고 해야 적당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온 책과 필기구와 각종 공부 도구를 꺼내놓고 종일 공부한다. 시험 기간에야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상당히 많은 시간은 취업을 위한 공부에 열중한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열람실의 열기는 진중하면서도 뜨겁다.

대학 도서관의 기능은 무엇일까. 상식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대학 교육에 필요한 정보를 모아서 연구자와 학생들을 매개하는 역할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 대학 도서관은 연구와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모아서 분류하고 수장하는 기능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학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은 역시 자료를 모으는 장서실과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열람실 기능으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두 공간, 장서실과 열람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가에 따라 도서관의 성패가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떤가. 장서실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드는 데 비해 열람실은 공부하려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안타깝지만 장서실의 자료가 열람실을 통해 활용되는 조화로운 풍경은 더 이상 찾기 힘든 상황이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두 공간 사이의 불균형은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문제는 학생들의 공부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오직 취업과 관련된 것들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보니 열람실을 드나드는 일차적 목표는 취업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 확보인 셈이다. 게다가 대학교 평가에서 취업률이 매우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고 있으니, 그 공간의 부족에 대한 불평이 터져 나와도 대학 당국에서는 대응할 말이 별로 없다. 장서실의 자료가 활용되는 공간으로서의 열람실은 개인의 취업을 위한 사적 공간으로 변한다. 한때 수많은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던 시절은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몇 년째 한 번도 대출되지 않았던 책은 그 책의 중요도에 대한 배려 없이 폐기 처분될 위기에 봉착했다. 그런 책들을 폐기처분함으로써 확보된 공간은 다시 취업 공부를 위한 열람실로 전용된다.

대학 도서관에서 수준 높은 장서를 확보하는 것은 학교 밖의 도서관에 비해서 쉽다. 당장 해당 학교에서 정년을 맞는 교수들의 책을 기증 받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장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증을 받는 일조차 어렵다. 그 많은 책을 보관할 공간이 물리적으로 없기도 하지만, 전문 사서의 부족, 터무니없이 부족한 예산 등 여러 가지 난관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책의 기증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니 이런 현실 앞에서 누가 대학 도서관의 장서 수준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상식적 수준에서 대학 도서관의 기능을 다시 생각해본다.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학생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역시 대학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도서관이 수준 높은 장서를 구비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 역시 대학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장서실의 자료들이 열람실에서 소외되는 현실, 장서실과 열람실이 기형적으로 어긋나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어쩌면 학생들의 공부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서실과 열람실 사이에서, 대학의 이상과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김풍기(강원대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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