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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권한·책임’ 키우고 공개심사제도 도입하자
편집위원 ‘권한·책임’ 키우고 공개심사제도 도입하자
  • 김종인 부산대 HK고전인문학 연구교수
  • 승인 2009.10.05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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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술지 논문심사제도 개선 필요하다

나는 몇 차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학술지 편집과 관련된 윤리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학계가 이 문제에 대해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 학술지의 논문심사 절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쓴 논문들에 대해 ‘게재불가’ 통보를 받고서이다. 나는 지금껏 두 차례 게재불가 통보를 받았다.

    나를 당혹스럽고 의아하게 한 것은 심사의 최종 결과가 아니라 심사자의 심사평이었다. 심사평 하나하나가 모두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심사자 자신의 지극히 자의적인 느낌만 가지고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심사자는 논문의 어디에서 논지가 어떻게 산만한지, 기타 어떤 자료가 필수적으로 참고 됐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분석되지 않았는지 전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었다. 더욱 나를 황당하게 한 것은 “‘학문적 글쓰기’가 아닌 일반 신문이나 잡지 글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였다. 게재불가 판정을 내린 심사결과서 치고는 너무도 무성의한 내용이었다. 적어도 누군가가 정성들여 쓴 논문에 대해 ‘게재불가’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논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보다 상세한 지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들 상호간의 예의일 터이다. 심사결과서를 받은 지 이틀 만에 재심청구서를 써서 편집위원장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학술지 논문 게재 절차와 관련해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느꼈다. 우선은 심사자에게 익명성을 보장해 주고 또 일방적 비판을 허락하는 현재의 학술지 논문 심사 구조 자체를 공개심사 제도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개심사 제도는 심사자의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것이 기본 골격이 될 것이다. 심사를 받는 논문의 저자에게 알림은 물론이고, 학술지에도 해당 호의 심사에 참가한 사람을 모두 밝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공개 심사는 논문 심사자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학회에서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인 논평을 하는 마당에 학회지에 투고한 논문 심사를 익명으로 할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트집잡기식 심사가 아니라 냉정하고 객관적인 학문적 비판 의식으로 논문 심사를 한다면 논문의 저자도 그러한 비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보다 신뢰성 있는 학술지의 논문심사를 위해서는 편집위원들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부분 학술지의 경우 학회지에 실릴 논문의 주제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논문 심사는 외부 심사위원들에 맡겨진다. 학술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편집위원회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맡기느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편집위원들은 해당 학술지가 추구하는 분야에서의 학문적 역량과 학자적 양심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하며, 자신들의 명예를 걸고 학술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해당 학술지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외부 논문 심사자에게 사실상 최종적인 결정까지 맡기는 것이 아니라 편집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외부 심사자에게 게재 여부의 판정을 묻는 심사를 요청해서는 안 된다. 외부 심사자로부터의 평가는 다만 참고 자료로 활용하고 최종적으로 어떤 논문을 실을지 여부는 편집위원들이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책임의 소재가 명확해지며, 심사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학술지의 역할을 보았을 때 이의신청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학술지들은 한국연구재단에 등재돼야 제대로 된 학술지로 사회적 공인을 받게 돼있다.
또 한국에서 학자로서 학문적 능력을 평가받는 가장 객관적이고 어떻게 보면 절대적인 기준이 소위 등재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싣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학자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술지들은 논문 게재를 위한 심사를 할 때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심사의 공정성에 대한 이의 제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이러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기본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된다. 실제로 상당수 학술지는 형식적으로는 이의제기를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심사, 수정 요청, 인쇄를 마무리하고 있다. 도저히 충분하고 적절한 심사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기간이 아니다. 옥석을 가리기 어려운 즉결재판식의 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술지의 기능이 우리나라만큼 막대한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술지는 수준 높은 논문들을 게재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좋은 논문을 가려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책임이 부여되는 논문심사제도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무책임한 논문 심사가 이뤄지는 현재의 상태를 개선해 좋은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편집위원들이 논문 심사의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논문심사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김종인 부산대 HK고전인문학·비교문화사업단 연구교수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반야심경의 이해』,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은 왜 몰락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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