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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도시의 제 멋
[대학정론] 도시의 제 멋
  •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 승인 2009.10.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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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정부들이 브랜드 가치를 알아차리고, 도·시·군들이 이미지를 높이는 작업에 열심이다. 하나같이 지방자치단체들은 마크, 로고, 캐릭터 그리고 단체의 訓을 만들었다. 일찍이 기업들이 CIP(Cooperate Identification Program)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드날리던 것을 본 것이다.

이 지방 정부들의 디자인에서 몇 가지 공통된 점이 보이는데, 하나는 대체로 향토색을 도모하지만 현대적이고 싶다. 둘째는 하나같이 유치하다. 만화기법의 캐릭터로 대중과 친하려는 뜻은 알겠지만, 모두가 따라 하는 관료문화의 발상이다. 셋째는 이미지의 과잉이다. 글로벌하거나, 국제적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루려는 오브젝티브가 너무 많다. ‘세계 최고, 선진 용인’이 그러하다. 제천시는 기본 캐릭터 1쌍에 10경 캐릭터를 만들어 모두 12개이니 이미지가 분산돼 뭐가 뭔지 모르게 한다. 청도가 내세우는 도시 브랜드는 SingGreen이다. 9개 머리문자에 뜻을 딴 것인데 꽤 장황하다. 

도시 정부들은 세련되지 못한 도시의 공공 디자인이 도시문화를 3류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디자인 서울’이 먼저 시작됐고, 이어서 대구도 하고, 경주도 한다.

이번 시장은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도시경제에만 걸지 않는다. 도시 브랜드를 세계에 내놓기 위해 문화도시 디자인에 승부를 건다. 좋은 일이다. 도시 디자인이라는 말만 나오면 탄식이 앞서던 서울의 난맥상이었으니, 뭔가 특단이 발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울시는 운용 가능한 시스템을 동원해 도시의 모습 정리에 2년을 투자 했다. 다행히 이제 그 가시적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더 지속적인 시간과 꾸준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 억척같던 민간 빌딩의 간판이 문화경관이라는 뜻에 설득되고 있음이 놀랍다. 

서울은 이제 몇 가지 거점 작업을 가시화시키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센터는 세계 건축가 중에 진보적인 자하 하디드에게 의뢰됐다. 서울의 한강 디자인은 진행 중이지만 그 의지를 알겠고, 광화문 광장은 완성됐다. 문제는 또 의욕이 가시적 성과를 부추기고 과잉 디자인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공간을 만들어 놓고는 너무 채워 넣으려는 강박감이 작용한다. 한국 역사도 그려 넣고 꽃밭도 금수강산이고 장소의 의미를 채워 집어넣으려 한다. 현대 디자인의 텍스트성이라는 게 있는지는 아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지시하는 일은 아니다. 이 공간에다 위인열전을 만들려고 하니 또 복잡해졌다. 충무공 이순신의 장소였는데 세종대왕이 옮겨 와 앉으셨다. 문무의 뜻을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두 분이 여러 가지 상징성을 함께 이끌고 계시기에는 공간이 너무 좁다. 이것도 국가주의 문화이다. 내셔널리즘은 21세기 한국의 도시 디자인에도 여전히 유효하니, 계몽주의로 작동하는 사회 메커니즘을 걱정하는 것이다.

광장은 우리나라 전통의 마당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어야 한다. 온갖 기념물과 꽃밭, 시설물, 역사책 등이 그득 채워진 공간은 광장이기 어렵다. 광장은 ‘더 많은 것’을 담기 위해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비어 있어야 사람도 담고, 이벤트도 담고, 자연의 현상도 잘 담을 수 있다. 비움으로써 더 많은 텍스트를 담는다. 꽃밭으로 꽉 찬 공간을 어떤 사람들은 ‘데모 막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광장을 데모로 먼저 연상하는 사람의 생각이다. 광장은 데모만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일상성을 위한 것이다. 비어 있으면 공포를 느낀다는 심리도 있지만 거기까지 간 것은 아닐 터이고, 그보다는 뭔가 열심히 만들었다는 표시를 하고 싶은 게다.

광장은 장식으로 예뻐지는 것이 아니라, 장소의 혼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이러한 뜻은 서울의 한 광장 디자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 디자인과 국가 디자인의 뜻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이다.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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