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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강의 늘어 … 교육 質 제고 시급하다
‘무늬만’ 강의 늘어 … 교육 質 제고 시급하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9.28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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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업 영어강의,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학생들이 내 발음을 흉내낼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서울지역 ㅎ대학에서 수학교육을 전공하는 ㅂ교수는 미국에서 석·박사를 했다. ㅂ교수는 영어가 유창하다는 얘기를 곧잘 듣지만 한 학기 내내 진행되는 영어강의는 “자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잉글리쉬즈’(비영어권 사람들의 영어)가 대세라지만 일상회화와 대학교육은 분명히 다르지 않나.”

‘전공 영어강의’가 부쩍 늘고있다. 대학평가에 국제화 지표가 등장하면서부터 ‘외국인’ 모시기에 여념이 없던 대학들이 학부교육 내실화의 흐름을 틈타 영어강의를 경쟁적으로 늘려온 결과다.
대학평가 국제화 지표(외국인 교수·학생·교환학생·영어강의 수)가 강조되면서 대학 간 ‘수치 싸움’ 탓에 영어강의에도 무용론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전공 영어강의는 가중치가 20점(총점수의 4%)에 달한다. 올해 상위 10개 대학에서 평균 전공 영어강의 비율은 약 30%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영어강의 수’가 추가된 2006년부터 영어강의는 급속도로 늘었다. 한양대의 경우 2005년 1학기 9%(8.8%, 147강좌)에도 못 미치던 영어강의 비율이 올해 22.36%(436강좌)로 2배 이상 늘었다. 289개 강의가 새로 생긴 셈이다. <중앙일보>는 “국제화가 업그레이드됐다”고 평가했다.

영어강의의 시너지 효과에 확신을 가진 대학들은 ‘일단 자리를 깔아야 누울 자리를 정한다’는 입장이다. 홍성조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산업시스템공학과)은 “영어강의는 교수와 학생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영어라는 수단으로 할 뿐이다. 다만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작용도 만만찮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환경학부)가 우려하는 것은 전공교육 부실화다. “1학년은 교양, 4학년은 취업을 준비한다. 복수전공을 감안하면 전공은 많아야 36학점인데 영어강의로 끙끙대다 몇 과목 수업을 망치면 전공은 거의 없는 셈이다.”

수업진도도 더디다. 교수들은 번역서를 원서로 바꿔서 영어강의를 하면 수업 진도는 1/3로 떨어지고, 번역본이 있으면 절반 수준이라는 데 공감한다. 전공 혹은 교수별로 영어강의 1과목을 강제하거나 장려하는 대학에서는 편법이 기승한다.

원서를 읽어 주는 것으로 수업을 마치는가 하면 5분~10분 교과목 소개만 영어로 한다. 무늬만 영어인 셈이다.시험 문제를 한글로 내기도 한다. 이른바 ‘서류상 영어강의’ 사례들이다. 영어강의 신청 시 강의개발비, 업적평가 가산점 등 혜택이 많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외면으로 영어강의가 폐강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점을 악용하는 교수들은 영어강의를 신청해 합법적으로 수업시수를 줄이기도 한다.

대학평가 국제화 지표와 대학정보공시제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 입시 홍보 등으로 전공 영어강의의 확산 속도는 줄지 않을 전망이다. 천태만상의 전공 영어강의를 바라보는 교수들의 시선에는 교육의 질 측면에서 우려가 짙게 배어있다. 교수들은 대학평가 지표에 따른 쏠림현상이 아닌지 중간평가 하자는 데 중지를 모으고 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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