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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교육은 해야하는데 … 정말 고민입니다”
“글로벌 교육은 해야하는데 … 정말 고민입니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9.28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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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수업 영어강의 확산, 어떻게 생각하나

“헬로우 에브리원…”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교수는 아랑곳 않고 밀어붙인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학생들의 의아한 눈빛은 변함이 없다.

 


지역 국립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강의하는 ㅇ교수는 지역대학 출신의 순수 국내파 20년차 중견 교수다. 여러 주요 보직을 거치면서도 최근에는 베스트 티처까지 올랐다.
“강의 내용을 ‘소개’하는 수준이죠. ‘글로벌 교육’은 해야 하는데 고민입니다.” 대학에서 정책과 실무를 두루 거친 ㅇ교수에게 영어강의는 여전히 생경하다.

 

영어강의의 파급속도가 심상찮다. 교양과정에서 생활회화나 자격증 준비 과목쯤으로 치부되던 대학 강의실 속 영어가 전공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어국문학, 한문학과 등 ‘전공불문’이다. 지난 2004년 어윤대 당시 고려대 총장이 “모든 전공과목에서 영어강의 비중을 2005년까지 30%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듬해 <중앙일보>가 대학평가 항목에 국제화 지표를 가다듬으면서 전공 영어강의 항목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대학가는 자체 수량파악에 들어갔다.

 

엇갈리는 시선, 대세론과 신중론
전공 영어강의는 5년여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어떻게 진화했을까. 영어강의에 회의적이던 교수들조차도 점점 외면할 수 없는 ‘영어의 힘’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강의실 사정은 여전히 과도기에 머물러 있다.
전공 영어강의의 확산 일로는 ‘세계적인 대학’, ‘글로벌한 인재 양성’에 필요충분조건일까. 우선 영어강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시각이다. 세계화에 무게를 두는 장영준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전공 지식을 세계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적인 무대에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영어강의는 도덕성이나 민족정신의 문제가 아니고 선택이다.”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매학기 영어강의를 한 과목씩 11년째 진행해 온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과)는 “영어강의를 목표 지향적으로 삼아 서두르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영어강의는 자칫 한국적 사고를 좁히고 영미식 사고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대학교육의 목표가 사회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 5년간 영어강의의 효과에 대한 논박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간 대학사회의 변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전공 서적 번역서가 많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져 원서 수업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요즘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고 어학연수를 다녀온다는데 영어를 썩 잘하는지 못 느끼겠다.”

지역을 불문하고 교수들은 영어강의의 밑바탕이 될 학생들의 ‘실력’은 대학 간 차이보다 전공과 학생 개개인의 영어 능력면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영어강의의 바람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변화를 지연시킬 수 없으니 가능한 전공부터 시작하자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ㅇ교수는 공학계열에서 비교적 영어강의가 수월하다는 인식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대학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전공지식을 ‘가르친다’는 개념은 지난 지 오래다. 이제는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게 이끌어줘야 한다. 공과대학 교수법에도 토론식 수업의 비중이 느는 이유”라고 말했다.

 

강의평가 가산점, 상금… 유혹하는 대학들
일단 영어강의 활성화를 위해 대학은 여러 가지 혜택을 제시하고 있다. 2006년부터 신임교수에게 영어강의를 1과목 이상 의무화하고 있는 동국대는 (영어)강의자료개발비 외에도 학기마다 영어 강좌 ‘베스트 렉처’를 선정, 상금 100만원과 50만원 상당의 상패를 수여하고 있다. 영어강의 특성화를 지향하는 경영대학에는 자율예산을 배정해 영어강의 비율을 2011년에 9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해 1학기에는 영어권 유학생 10여명을 유치했다. 영어강의에 한해 절대평가를 인정해 주고, 강의평가에서 가산점까지 부여한다. 홍성조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산업시스템공학과)은 “강의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영어의 중요성을 감안,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 흐름은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공 영어강의 바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기준과 관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이 치명적인 위험요소가 되기도 한다. 전공 영어강의에 중간점검이 필요한 이유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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