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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입학사정관제 허와 실
[딸깍발이] 입학사정관제 허와 실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 승인 2009.09.14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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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입학사정관’ 제도의 시행을 놓고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시에 관한 어떤 새로운 제도도 다 그렇듯이 수험생, 학부모, 일선고교, 사교육 시장 및 정책 당국마저 갈피를 못 잡고 전전긍긍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의 입학사정관 제도는 그 파장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먼저 정책 당국은 입시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면서도 일정량의 대학 지원금을 빌미로 입학사정관제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임기 중에 100%까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이러자 각 대학들은 한 번도 실시해 보지 않은 매우 다른 형태의 학생선발 제도의 마련과 그 운영방안에 부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수험생과 학부모는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하고 있고, 기회다 싶은 사교육 기관은 벌써부터 입학사정관제 필승전략을 팔기 시작했다. 정책의 원래 취지였던 사교육비 부담 감소가 이뤄질지 미심쩍다.

    필자가 아는 한,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선 그 용어에서 비롯한다. 입학을 ‘査定’한다는 말에서 대학 내의 일개 입학관련 요원이 한 수험생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오해를 낳게 되고, 더구나 ‘官’자까지 부쳐서 거기에 어떤 권위까지 더한 용어가 됐다. 대학 내부의 규정과 관례이지만, 입시의 합격을 ‘사정’하는 것은 총장의 감독 하에 각 단과대학의 학장단이 최종적인 책임을 갖는 법률적 행위이다. 일개 입시 보조 인력이 사정을 하고 말고 하는 일이 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입학의 사정이란 ‘입학사정관’의 1차적 판단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각 단과대학 및 학과의 교육 책임자가 한 수험생의 입학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입학 사정관제에 대한 이러한 혼란은 선진국(대개는 미국)의 입시관행을 무조건 본따 온 데서 비롯한다.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교육 여건과 환경에서 유래한 제도를 전혀 사정이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옮겨다가 시행하려는 자체가 무리한 일인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이 기능을 담당하는 직위를 ‘reader’라 하는데 축어적으로 번역하면 ‘입학자료 평가사’라 할 수 있다. 입학 지원생이 제출한 자기소개서 및 각종 자료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유수 대학들은 100~200명의 논술평가사를 상시적으로 고용하고 있고, 심지어는 일부 명문 사립 고등학교도 다수의 평가사를 활용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미국의 교육 환경에서 비롯한다. 물론 이 평가사들은 입시철에는 많은 양의 수험생 제출 자료를 판정하는데 동원된다. 그리고 이들의 일차적 평가가 앞서 말한 상위 기관의 판정 및 사정에 결정적 근거가 되기는 하지만, 이들이 최종적으로 입학을 사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대학들은 지역, 인종, 성별, 가계수입 등의 할당을 고려해 입학생들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대학의 자율적 결정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자료요청 등을 요구하며 시비 걸지도 않고, 대학은 관련 자료를 절대 외부로 공개 하지도 않는다.

    또 한 가지, 이들 평가사들은 입시철이 아닐 때는 전국의 고교를 돌아다니며, 대학 홍보와 아울러 우수 인재의 입도선매를 위해서, 학생의 입장에서나 그리고 대학의 입장에서 입학을 희망하거나 입학을 시키고 싶은 집단에 대해 면접 활동을 벌인다.

따라서 이 직위에는 애교심이 강한 그 대학 출신의 동문들이 대거 채용되기 마련이다. 대학 서열이 우리나라에서처럼 학교별로 순위 지어져 있지 않고, 그룹별로(초상위권, 상위권, 중위권 등) 매겨져 있는 상황에서, 같은 그룹 안에서 경쟁대학간 인재의 조기 확보 및 수시 확보는 그 대학 미래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토록 많은 재원을 들여가면서 위와 같이 충분한 수의 평가사를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진국의 ‘논술 및 면접 평가사’에 해당하는 reader를 ‘입학 사정관’이라는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말로 번역해 오해를 야기하고, 교육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 당 몇 명의 소수 인원으로 하여금 이러한 막중한 업무를 전담하게 하면서, 그것도 즉각적으로 실시하려는 정책 당국과 일부 대학의 과감성을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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