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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채권·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식코’의 나라로 갈까
의료채권·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식코’의 나라로 갈까
  • 이상이 제주대·의료관리학
  • 승인 2009.09.14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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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다가온 의료민영화 입법 쟁점

정기국회 일정을 두고 공방하던 여야가 지난 9일 의사일정을 합의했다. 산적한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가 이뤄질 것인데 의료민영화 법안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도에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 비영리법인 병원의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의료채권법, 비영리법인 병원의 합병과 부대사업으로 병원경영지원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이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의료민영화 관련 법률들이다.

    현 정부 출범 이래 의료민영화 논쟁의본질은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의료서비스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고, 이를 산업화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로 삼으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의 영리추구와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자유로운 투자를 허용해야 하는데, 이는 곧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성격이 자본 주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가 결국 의료공급체계인 병원과 의료재정체계인 의료보험을 대자본과 자본시장 주도의 시장에 넘겨줌으로써 ‘식코’의 나라 미국 의료제도를 닮아가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국민의료비는 폭등하고, 서민과 빈자는 의료이용에서 차별을 당하고, 의료서비스의 질도 계층별로 양극화되며 결국 중산층까지도 의료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본시장과 금융자본 주도의 의료시장이 아니라 정부재정과 공적재원의 획기적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식 공적 의료체계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양 진영 간의 갈등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크게 격돌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정부가 제출한 세 법률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는 입장인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을 포함한 야4당도 이에 동조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안’은 정부가 지난해 10월 21일 국회에 제출했던 법안으로, 지금까지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정부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법률로 분류하고 있으나 시민사회의 반대논리도 만만치 않다. 채권은 양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식과 성격이 비슷한데, 이는 자본을 의료부문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결국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영리성을 강화함으로써 비영리병원의 수익극대화 추구로 인해 의료비의 급증과 의료이용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란 주장이다.

    둘째, 의료법 개정안은 정부가 7월 29일 의료법인 부대사업에 병원경영지원사업을 추가하고, 의료법인의 해산사유에 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해 입법예고한 것이다. 시민단체들과 야4당은 이를 의료민영화 조치로 간주하고 격하게 반대하고 있어 정기국회 최대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비영리병원의 부대사업인 병원경영지원회사(MSO)에 외부투자자들이 투자를 하고 이윤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 이번 입법의 핵심이므로 사실상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주장이다. 또 비영리법인 병원의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독점 강화와 함께 영리추구 행태가 더욱 강해진다는 주장이다.

    셋째,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 여부인데, 먼저 제주도에 이를 허용하는 법안이 정기국회에서 심의될 것이다. 이와 별개로 전국적 수준에서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정부가 산하 연구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의사결정은 올 11월에 이뤄질 전망이다. 당장의 정기국회 쟁점은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인데, 이에 대해서도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야4당도 반대하고 있는 만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제주도에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되면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에도 이를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곧 전국적인 의료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제주대·의료관리학

현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겸 운영위원장이다. 예방의학 전문의로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복지국가와 사회정책을 주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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