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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추운 여름’과의 이별
[문화비평] ‘추운 여름’과의 이별
  •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 승인 2009.09.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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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9월이 왔다. 마침내 추운 여름과 이별하는 반가운 계절이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여름을 나는 내게 7~8월은 다른 의미에서 몹시 추운 계절이다. 때로 집을 나서기가 걱정될 정도로 지나치게 냉기를 내뿜는 문명의 이기가 도처에 널린 덕분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냉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리거나 과도하게 냉방된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 자리를 이동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숄이나 머플러를 비상용으로 가방에 담아서다니는 내게 인공적인 바람이 난무하던 여름을 이기고 서서히 다가오는 진정한 바람의 9월은 한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나는 펄펄 끓는다는 말을 써도 과장이 아닌 인도의 델리에서 7년여를 살았다. 섭씨 45도를 넘긴 수은주를 연중 몇 주씩 지켜보는 그곳은 정말 덥다. 남부지방 사람들은 1년 365일 중에 320일 정도를 더위 속에서 보낸다. 그 긴 여름은 전제군주처럼 횡포가 극심하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뜨거운 햇살이 바싹 마른 대지로 무정하게,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한 여름, 많은 사람들이 ‘살인적인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도 이 무렵이다. 그 모진 여름을 일곱 번이나 견딘 나는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며 다짐했다. “내 인생에 이제 피서는 없다.”아무리 더워도 우리나라의 더위가 그 독한 인도의 여름을 이길 수 없기에.

    나도 처음엔 인도인이 더위를 타지 않는 줄로 알았다. 아득한 옛날부터 대를 이어 그곳에서 살아온 그들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어떤 유전자를 가졌으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7년여를 살면서, 이후 해마다 인도에 드나들면서  알게 됐다. 그들도 나처럼,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더위를 타고, 그래서 한 줌의 그늘과 한 움큼의 시원한 공기에 마음을 쉽게 내주며 물과 열렬한 연애에 빠진다는 것을. 그들은 이 여름에도 더위를 피해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오는 나와 달리 폭군처럼 타협 없는 더위를 묵묵히 참고 견딘다.

    그래서 뜨거운 세상의 그들은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여름을 이길 수 있는 인도 문명이라는 희망을 만들었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정신문명은 비호의적인 생태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인도가 세계에 널리 수출한 요가도 그 산물이다.

요가는 ‘수련’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몸을 잘 갈고 다듬어서 무더운 더위, 살인적인 더위를 이기려는 인도인의 생존전략의 하나다. 요가가 가르치는 정신집중과 깊은 숨쉬기, 올바른 자세와 명상은 몸을 차게 만들어 주변에 널린 위험한 존재와 열대환경에 대한 냉정함과 무심함을 심어준다. 언젠가 이 코너에서 언급한, 바람은 드나들지만 햇볕의 침투를 배척하는베란다도 더운 인도가 만들어서 세계에 선물한 지혜로운 생활공간이다.

    그러므로 인도에서 거주한 길지 않은 경력이 나를 더위에 초연하게 만드는 건 아니다. 나도 땀을 흘리고 때로 더위에 짜증을 느낀다. 다만 더위를 참고 견디며 인공적인 피서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여름을 나려고 애쓸 뿐이다. 극심한 인도의 여름을 기억하며 견딜만한 이곳의 여름에서 ‘비교우위행복’도 되새긴다.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를 가진 우리나라의 기후를 맘껏 즐기려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조금만 더워도 냉방이 시원치 않다고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도한 냉방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고 그래서 기후가 날로 더워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냉방기의 눈금을 올리고 다시 더운 날씨를 만드는 것이다. 어디 여름뿐인가. 겨울에는 춥다고 난방지수를 높이라고 야단이다. 여름엔 겨울을 지향하고 겨울엔 여름을 욕망하면서 더위와 추위에 대한 참을성과 면역력을 줄이고, 결국은 삶에 대한 생존력을 약화시킨다. 참는 자가 이기는 법이거늘.

    어느 해 여름에 아랍의 사막지대에 있는 한 호텔에서 목욕을 하려다가 벽에 붙은 ‘물은 생명’이라는 글귀를 보고 간단하게 샤워를 끝낸 적이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에너지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샘물이 솟아나듯이 에너지가 마냥 나올 순 없는 것이다. 에너지절약이 지구의 미래에 직결된다고 생각하면서 냉방기의 눈금을 한 단계 내리는 실천이 필요한 건 그 때문이다.

    이제 막 도착한 9월은 소음과 전력의 소비를 수반하는 냉방기와 달리 자연의 바람을 공짜로 만들어줘서 좋다! 여름내 기다리던 이 가을에 가끔씩 뜰 앞에 나가서 서늘한 바람을 욕심껏 껴안을 것이다.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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