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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대학개혁, 느림의 미학
[딸깍발이] 대학개혁, 느림의 미학
  • 교수신문
  • 승인 2009.09.0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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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편집기획위원 / 충남대·심리학과

최근 교환교수로 해외에 머물다 복귀하는 교수들마다 대학이 어수선하고 낯설며, 왠지 학교로 복귀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를 급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수주일 정도 학교를 떠나 있다 돌아온 교수들도 학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학교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이 급해진다고들 말한다.

 인구의 격감에 따른 대학입학 자원의 급감, 그 동안 국내에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어내지 못한 교육정책 부재 등 복합적인 요인에 따라 대학정책의 혁신이 필요하게 됐고, 정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새로운 대학정책들을 연일 내놓고 있다. 이를 따라가기 위해 각 대학들은 저마다의 정책적 아이디어들을 실천하면서 생존을 위한 시험무대를 가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100대 대학’이니, ‘아시아 100대 대학’이니, 아니면 ‘글로벌 대학’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면서 각자 살아남기 위한 해법을 찾으려는 대학들의 분주함이 마치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앞만 보고 전력 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을 펴다보면 당연히 내부에서는 행하는 자, 따르는 자, 저항하는 자로 나뉘어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홍을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해 가면서 각자 이로운 방향으로 대학을 이끌어 가야 하는가가 대학의 리더들에게 새롭게 던져진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리더인 총장과 주요 참모들은 행하는 자들로서 종종 저항하는 자들의 공격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시험무대에서 주요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특히 ‘평가’에 따른 재원 배분이며, 대학 내 다툼의 가장 주된 요인의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그 동안 평가에 익숙하지 않았던 대학과 교직원들에게 치열한 순위 경쟁의 현장으로 내몰고 있으며, 각 관련 대학이나 부서들은 평가 항목들에 대한 지수 높이기에 열을 올리는 실정이다.

 연구실적 증가, 외국인 학생 유치, 외국인 교수 영입 등 모두 한결같이 질적 수준보다는 일단 눈에 보이는 양적 수준 높이기에 혈안이 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각 대학들이 ‘평가’ 영역을 강화함에 따라 당연히 대학의 내부 평가가 중요하게 됐고, 단대 평가, 학과 평가, 개인 평가 등의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평가에 따른 재원 분배가 어느새 대학 운영의 중요한 핵심 사안이 됐다. 결국 이 때문에 대학들마다 큰 내홍을 겪고 있는 듯 하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다툼과 온갖 사상이 난무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시대상에 대한 염증을 엿볼 수 있는 노자의 도덕경 중에 ‘무위이무불위(無爲以無不爲)’라는 말이 있다. ‘하지는 않으나 하지 못함이 없다’는 의미인데, 어떻게 보면 ‘하기 위해서’ ‘하지 않는다’라는 역설적 표현과 같이 들리기도 한다. 대체로 “의도적으로나 인위적으로 행하는 법이 없고, 무엇을 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지만 스스로 그러하게, 그러면서도 법칙에 맞게 운행해 천지만물을 생성시킨다”(2006년 11월 17일자, 한국경제, A39면)는 의미로 해석된다.

 엄밀히 보면, 대학의 리더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을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대학 내부의 구성원들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대학 리더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대학 구성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특성을 꼬집으며 개탄스러워 하는 풍토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학의 새로운 리더십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노자는 참다운 ‘위’를 찾기 위해 참되지 않은 ‘위’를 부정했다. 아마도 우리가 피해야 하는 것은 행위 자체, 바쁘게 사는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제도화된 빠름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일방적인 관 주도로 대학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을 비판하듯이 대학 내에서도 총장과 소수의 참모들만이 일방적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 가려고 한다거나, 또 이를 급하게 재촉하고 앞만 보고 나가려고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다양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유위(有爲)’가 아닐까 싶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결국 다툼의 단초가 되지만, 과거 성인들은 무엇을 하는 것은 무위로써 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빠르고, 엄청난 변화에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는 지금, 달리는 속도를 줄이고, 찬찬히 살피면서 구덩이를 피해갈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정책을 실행에 옮길 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돌아보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이 시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한다.

민윤기 편집기획위원 / 충남대·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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