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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기피-현상과 본질
이공계 기피-현상과 본질
  • 교수신문
  • 승인 2002.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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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요즘 고등학생들의 이공계 진출 기피현상이 장안의 화두다. 몇 년 사이 입시에서 이공계에 진출하려는 학생들의 비율이 현저하게 줄면서, 급기야 올해에는 전체 입시생 중 30%도 안 되는 학생들만이 이공계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때는 비실용적인 학문이라는 원죄로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더니, 이제는 실용적인 학문을 대표하는 이공학마저 마치 위기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수많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문·이과 교차지원의 허용, 이공계 출신들의 사회적 지위의 지속적인 약화와 빈약한 사회적 대우, 하드웨어 작업을 기피하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 등등. 또한 이는 대학내에서의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사이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인적자원의 사회적 배분을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기피 현상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상적 이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본질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이공계와 인문사회계 사이의 외형적인 불균형 차원에서 이해될 수 없다. 실제로 이공계에 진출한 학생들의 경우 대다수 우수한 학생들은 의학계열에 몰려 있고, 그들 중 대다수 학생들은 진료 위험성이 적고 사회적인 부를 잘 보장해 주는 전공 영역을 선호하고, 외과적인 진료 및 수술이나 기초의학 연구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순수 이공학 계열에 진출한 학생들을 보더라도, 산업과 직접적인 연계성이 높은 응용기술 분야에는 다수의 학생들이 몰려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기초과학 분야는 한산하다. 인문사회계열의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인 부가가치 창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실용적인 분야에는 학생들이 과다하게 몰려 있는 반면, 인문학이나 기초 사회과학 연구 분야는 소외돼 있다. 전반적으로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관련 연구 쪽에, 기초 연구보다는 사회적인 재화와 직접 연결되는 응용 연구 쪽에 편중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공계 기피가 아니라, 자연·인간·사회를 근본적으로 연구하는 기초학문 전반에 대한 기피가 문제의 본질인 셈이다. 물론 동등하지는 않겠지만 이공계 기피는 인문학에 대한 기피처럼 이러한 본질이 부상하는 한 측면 혹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기초학문은 단순히 응용을 위한 기초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개념체계의 확립·도구적 방법의 설정·근본원리의 탐구 등 응용연구 자체를 가능케 하는 필수조건을 구성한다. 그러한 까닭에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대학의 존립근거에 중요한 축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의 위기, 이공계 기피 현상, 기초학문의 붕괴로 이어지는 21세기 대학의 모습을 다시금 원점에서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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