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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보직과 本職
[딸깍발이] 보직과 本職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 승인 2009.07.1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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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수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는 한두 번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 행정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보직을 맡게 되면 연구자 및 교수자로서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고,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교수 본연의 호흡을 놓치게 되고 이에 비례해 보직 자체의 논리에 빠져들거나 자리에 연연하게 되고 심지어는 심신의 피로가 누적돼 건강마저 해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손실에 대한 보상은, 얼마 안 되는 보직수당과 책임수업시간수를 경감해주는 것뿐이다. 아마도 타이틀이 주는 사회적 위상과 그에 따른 봉사정신과 명예감만이 이러한 희생을 보전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선진국의 대학에서는 교육, 연구와 대학행정은 엄격히 구분돼있고, 대학행정에 교수들이 참여하는 경우라도 그것은 교수로서라기보다는 전문행정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정당한 비용을 치르고 활용하고 있다. 한국 대학의 입장에서는 가장 최소한의 비용으로 대학행정을 운영해야 하는 고육지책으로 학교행정의 중추를 교수들에게 맡기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학교운영차원에서는 전문성과 안정성의 결여가 항상 문제가 된다. 2년 또는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비전문가인 교수들이 왔다가 업무파악이 이루어질 쯤이면 떠나가고는, 또 다른 비전문가가 오곤 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원천적인 문제들은 한국대학의 재정자립도와 체질개선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지기까지는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필자 역시 두어 차례 보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보직을 맡게 될 다른 교수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주요보직을 맡게 되는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있다. 그 하나는 업무의 일상논리에 빠져 살다 보면 자신이 그 보직을 영원히 맡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짧게는 2년, 길어야 4년이면 다시 본직인 교육과 연구로 돌아갈 것이라는 뻔한 이치를 잊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하나는 학교에서 초미의 중요한 사안들을 일상적으로 다루다 보면,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면서 “내가 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거나 심지어는 이 학교가 내 것 인양 착각하게 되고, 이에 따라 다른 선후배 교수들이 하찮게 여겨지는 신기루와 같은 권력감에 빠져드는 것이다.

    필자는 보직 수행 후 권력공백감과 허탈감에 빠져 교수 본연의 자세로 쉽게 돌아오지 못하거나, 더 나쁜 경우는 이제 본직은 접어두고 다음번의 보직사냥을 위해 허송세월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한번쯤 맡아야 할 보직이라면 다음의 두 가지  경우를 경계하며 보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무사안일형’이다. 어떻게든 상하 간에 큰 문제를 안 일으키고 원칙도 없이 미봉책으로만 그때그때마다 상황을 호도하고 지나가면서, 말하자면 보직의 직위 그 자체만을 유지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는 자세이다. 이는 건설적인 학교운영에 도움이 될 리가 전혀 없다. 또 하나는 ‘벼슬형’이다. 보직을 벼슬이나 감투로 알고 위세를 부리고자 하는 유형이다. 이러한 성향의 보직자들은 윗사람 눈치보기와 비위맞추기에 뛰어나며 아랫사람들(사실, 교수들 사이에는 위아래가 없는데도)에게는 지극히 권위적이다. 윗사람의 의지가 반드시 바람직한 학교운영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최악의 경우에 속한다.

    어차피 수행해야 할 보직이라면, ‘중재형’을 제안하고 싶다. 중재형이란, 첫째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교육적 이상이나 현장에서 축적한 전문가적 자질을 대학의 현실에 접목시켜 이를 최대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항상 견지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원칙과 규정을 넘어서지 않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전후좌우로 소통시켜 학교 중추의 정책적 의지와 교수단 일반의 에너지를 화합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자임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교수의 본직은 교육과 연구다. ‘보직은 본직을 위해 존재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명심하고 보직에 임한다면 그 봉사정신에 상응하는 만족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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