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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설문의 예의
[문화비평] 설문의 예의
  •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9.06.29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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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완전한 스팸메일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호기심만으로 그 따끈따끈한 스팸을 보고자 한다면 쓰레기통을 따로 뒤지는 수고를 이제는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정부당국이나 공공기관에서 보내는, 스팸에 가까운  홍보성 이메일의 수도 갈수록 늘어나 어떤 경우에는 꽤 짜증이 나기도 한다. 똑같은 이메일이 두 번씩 보내지기도 하고, 보내진 메일의 링크를 열심히 따라 가서 뭔가 있나싶어 보면 ‘산불조심에 각별히 유의하자’는 식의 황당한 사연도 있다. 홍보성 메일은 그냥 무시하고 지우면 되지만, 특정목적의 설문 메일을 그렇게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정부기관에서 지원하는 과제에 목이 메여 그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말단 교수로서 그 지엄한 염원이 담긴 당국의 설문조사를 무시하기에는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전에는 연말에만 쏟아지던 설문요구가 이제는 학기 중에도, 학기말에도 맹렬하게 등장하니, 이제  설문의 계절도 따로 없는 듯하다. 수인사가 없는 설문에도 예의 법도가 있고, 규범이 있으니 그에 대해 좀 말을 해보고자 한다.

    설문의 기본은 상호성에 있다. 즉 응답자가 충실히 답한 설문의 결과는 반드시 설문 당사자에게 최종의 결과로 되돌려 져야 마땅할 것이다. 설문 결과의 회신은 그 어떤 답례 선물(대개는 조악한 중국산 볼펜)보다 유용하고 기다려지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답한  설문이 최종 취합돼 그 결과가 언제까지 어떤 식으로 회신된다고 하면 나는 매우 성의 있게 설문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설문에 응했지만 그 결과가 요약돼 충실하게 되돌아온 경우는 5%도 채 되지 않는다. 그저 자기들 기관 보고서 꾸미는데 사용되는 정도의 자료라면 내가 굳이 공들여 답을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솔직히 든다.

    설문은 직관적으로 답을 할 수 있게 간결해야 할 것이다. 내가 답한 황당한 설문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귀하가 느끼기에 OOO기술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우리나라 기술이 각각 몇 년 정도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까? ” 마치 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저 여인에 비해 몇 배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이런 개별 신뢰가 부족한 자료를 모아서 취합하니 현실과 동떨어진 팩트가 난무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20년에는 OO전문가가 500여명 부족하다느니, 시장규모가 5000억이 될 것이라느니. 신뢰성이 낮은 기본 데이터를 아무리 모아서 가공한 들, ‘티끌모아 먼지’가 될 뿐이다.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설문도 있다. 가장 황당했던 설문은 모 연구기관에서 보낸 것인데, 이 설문은 엑셀 시트로 구성돼 가로 세로 숫자의 합이 맞아떨어져야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들어져 있었다. 어떤 것은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만 오류가 끝도 없이 발생해 불만은 극에 달하였다. 거의 취조수준인 이런 몰상식한 설문을 중도포기하려 했지만, 얼씨구, 이 불사조 설문 프로그램은 죽지도 않는 것이 아닌가. 결국 PC 전체를 끄는 것으로 그것과는 사투는 일단락 됐다. 설문도 이쯤 되면 거의 악성 코드 수준이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설문조사에 무려 4개의 ActiveX의 설치를 요구하는 설문은 무례하다고 할 수 있다. 길어야 10분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꼬드긴 설문이 25분을 넘어가게 되면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설문의 답에는 중간이 없어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이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형식이 허다하다. 매우 좋다, 좋다, 보통이다, 나쁘다, 매우 나쁘다. 이렇게 5가지를 늘어놓으면 바쁜 응답자는 무색무취의 ‘보통’을 선택함으로 마음의 빚을 보상받으려 한다. 따라서 설문에서는 절대 ‘보통’이나, ‘그저 그렇다’와 같은 중립적인 선택은 내 놓지 않아야 한다.  설문은 설문과정에서나, 그 결과의 활용에서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현장의 매서운 소리를 듣는 것이 껄끄럽다면 설문은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연구기관에서 2개, 정부부처에서 1개의 홍보 메일이 날아왔다. 당국에서는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홍보 부족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홍보는 충분하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넘친다, 아주 많이. 부족한 것은 소통이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소통 말이다.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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