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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진보와 패러다임의 전환] ‘적+녹+보라’가 서로 만들어 갈 곳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진보와 패러다임의 전환] ‘적+녹+보라’가 서로 만들어 갈 곳은
  • 고정갑희 한신대·영어영문학과
  • 승인 2009.06.29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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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인간중심주의가 가부장제와 얽혀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와 생태주의가 만나고,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페미니즘과 생태주의가 더 깊이 만나야 그 가능성은 열릴 것이다.

    현재 마르크스주의는 ‘적색은 녹색이다’라고 한다든지 적색과 녹색의 연대를 모색하려는 시도를 한다. 서구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이후에 등장한 이론과 운동들인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한계들을 먼저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현재 한국,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좌파진영이 생태주의와의 연대를 모색하려 하지만  계급이 최종심급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여전한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긴 하지만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페미니즘 또한 계급이나 인간중심주의 문제에 관심을 더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여성생태주의자를 제외하고 여성/남성의 젠더 문제를 생태 문제와 관련시킨 논자, 저자, 운동가들은 얼마나 있는가. 이 질문은 바로 생태주의가 가부장제를 생태주의의 문제로 가져올 것을 제안하기 위한 것이다. 근본생태주의, 사회생태주의 모두 생태여성주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적, 녹, 보라는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이 함께 작동한다면 이론과 현장 운동의 지형이 달라질 것이다. 적과 녹과 보라가 연계된 학술적, 현장운동적인 이론이 생산된다면 운동의 의제가 새롭게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이론과 운동이 공통으로 접근할 의제는 많다. 그것은 바로 생산과 노동의 재설정이나 재구성과 관계돼 있다. 그리고 세 이론과 운동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탁을 비판할 수 있다.

   ‘생산’과 ‘생산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세 가지 이론이 함께 논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오늘날 생산은 오로지 기술들이 생명을 파괴한다 해도, 상품 생산을 위한 기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를 위해 물을 얻는 공동 장소로서 강을 사용하는 것도 생산 노동에 가담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제까지는 그 물이 남성들의 기계 작업에 의해 대치될 때만 생산활동으로 간주됐다. 제 3세계 여성들의 관점에서는 생명을 낳고 유지하는 것이 생산성이라면, 현대 가부장제의 경제체계에 의하면 이윤을 낳는 것만이 ‘생산적’인 것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소외되고 지배됐고, 자연은 남성에 의해 분리되고 착취됐다.  자본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염두에 둔 페미니즘 이론, 가부장제와 인간중심주의를 염두에 둔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염두에 둔 생태주의가 각각의 이론을 더 심화하는 작업이 나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담론의 장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여성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 또한 다른 운동에게 열리면서 의제를 재구성하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운동의 장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적과 녹을 이미 고려해 본 페미니즘이 이 시점에서 적+녹+보라의 출발점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진보평론> 2009년 여름호에 실린 ‘페미니즘 관점에서 본 한국의 진보와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약한 글입니다.

고정갑희 한신대·영어영문학과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설립위원장. <여/성이론> 편집주간, 여성문화이론연구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 『페미즘 어제와 오늘』,『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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