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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시스템의 위기
[대학정론] 시스템의 위기
  •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 승인 2009.06.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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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린부르크(Yekaterinburg)는 우랄산맥 동쪽에서는 러시아의 가장 큰 도시로서, 구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섰던 보리스 엘친의 출신지이기도 하지만 1918년에 레닌이 러시아황제 일가족을 처형시킨 비극적 장소로 더 유명하다. 서방에서는 미국의 U-2정찰기 조종사가 1960년에 격침당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제 이 도시가 미국의 헤게모니를 종식시킨, 미국 주도의 세계금융질서에 종지부를 찍은 장소로 세계역사에 기록될 참이다. 지난 6월 15일과 16일 양일간 바로 이곳에서 브릭(BRIC) 4개국의 정상들이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 및 참관국의 정상들과 회담을 갖고 미국달러 없이 서로 무역할 방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아직 그들이 명확한 대안을 찾아낸 것은 물론 아니지만 시대에 뒤진 것으로 치부돼 온 물물교환 방식을 중국과 브라질이 양국 간 무역에 적용키로 합의했는가 하면, 다른 나라들은 고정 환율이나 이중 환율까지 무역에 도입하기로 결의했다.

    더 중요한 것은 4조 달러에 이르는 보유달러의 가치하락을 염려해 감히 달러와의 결별은 지금까지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라들이 보유한 달러자산의 포기까지 각오하면서 달러와의 결별을 집단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것의 영향은 9월/10월에 가시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8월/9월에 대규모 실업과 파산사태가 다시 미국을 강타하면 전가의 보도마냥 휘둘러 온 ‘재정적자에 의한 통화발행’이 이젠 더 이상 안 통한다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론이나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시스템의 위기는 폭력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유혹을 부추긴다. 우리나라에서 『빈곤의 세계화』의 저자로 유명한 미셀 초스돕스키 같은 사람은 그래서 이번 여름이면 사회적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계엄령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했다(http://globalresearch.ca/index.php?context=va&aid=12793).

    사태가 그런 식으로 파국으로 치달을 때쯤이면 그동안 사회 각 분야의 그 어떤 문제라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손 안 댄 분야가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오만불손했던 주류경제학이 마침내 자신의 죄상을 역사와 인류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장참여자들의 탐욕을 정부가 규제하지 않아야만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식으로 모든 이의 탐욕을 합리화하고 부추겨왔으며,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라고 교과서에서는 줄곧 설교했으면서도 일상의 도처에서 횡행하는 눈먼 돈과 공적 자금, 그것을 산업에까지 활용한 금융에 대해서는 눈감고 아웅 하듯 오히려 규제철폐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지를 탓해야 옳겠는가 아니면 그들의 위선을 탓해야 옳겠는가?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료교수나 학생에게는 무식하고 엉뚱한 사람으로 왕따 시키거나 색깔론으로 공격했고 다른 종류의 반성적 사고는 학생들의 경제학적 사고의 훈련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70년대 말부터는 아예 미국에서 경제사와 경제학설사를 강의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그런 식으로 절름발이 훈련만 받은 미국경제학박사들이 1990년대부터는 한국대학의 주류를 이루면서부터 한국에서도 경제학설사나 경제사를 강의과목에서 배제해 왔다. 아직 경제사를 강의하는 일부 대학에서조차 경제사를 계량경제사란 이름으로 바꿔 응용계량경제학을 강의하고 있다. 불구화된 교육관행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말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것이 제도로 굳어지고 오랫동안 새로운 세대의 두뇌를 지배하게 되면 결국 그 사회적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져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된다.

    이미 세계적으로는 주류경제학과의 한판 싸움을 거는 웹사이트(www.toxictextbooks.com)가 지난 5월부터 개설돼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고, 이 운동을 세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사이트(www.facebook.com/group.php?gid=73911783278)도 같이 제공하고 있다. 물론 문제는 새로운 이론, 새로운 교과서를 누가 어떻게 준비하는가가 더 근본적이다. 그러나 그런 작업은 경제학설사와 경제사를 통해 반성적 사고를 체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거기에 계량과 수리로만 훈련받은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학이 이 사회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다 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이라도 경제학 강의교과목에 경제사와 경제학설사를 첨가해야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젊은 세대를 주류경제학에서 해독시킬 신선한 공기가 공급될 수 있다.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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