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2:50 (일)
[딸깍발이] 祖國은 울고 있었다
[딸깍발이] 祖國은 울고 있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9.06.22 1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생각을 해보는 때가 있다. 무엇인가 이상하고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열심히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말에 혼자 신명이 나다가도 그저 생각이 꽉 막히고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는 때가 있다. 상상도 못할 사건이 벌어졌거나 개인적으로 도저히 풀지 못하는 과제에 부딪쳤을 때가 그렇다. 이럴 때면 소위 한계라는 것을 느낀다. 한 인간으로서의 한계, 도덕의 한계, 인간 사고의 한계, 국민 민도의 한계, 국가 수준의 한계 등등이 그것이다. 한계는 한계만으로 끝이 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계가 계속되면 극한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것이 문제다. 극한상황은 분노와 공포, 불안과 슬픔을 동반한다. 한계는 한계로 머물지만 극한상황은 어찌됐든 극복돼야하고 또한 해결책이 모색돼야 할 제반 사건이다.

    17세기 독일의 시인 안드레아스 그뤼피우스는 비참한 조국의 현실을 보며 「조국의 눈물」이라는 소네트를 썼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그래, 완전히 보다도 더 많이 황폐하게 되었구나! / 파렴치한 민족 무리들. 진군을 울리는 나팔소리. / 피로 비개덩어리가 된 대검. 천둥치는 대포소리. / 이것들이 모든 땀과 노력과 비축 물을 남김없이 고갈시켰구나.

  탑들은 화염 속에 서있고, 교회는 정반대가 되었다. / 시청은 먼지 속에 놓여있고, 강한 것들은 난도질당했고, / 처녀들은 능욕을 당했다. 우리가 쳐다보는 그곳에는 / 화염, 흑사병, 죽음, 마음, 정신이 통과해 지나간다.

  여기 성루와 도시를 통해서는 쉬지 않고 선혈이 흘러내리는구나. / 6년의 세 곱절이나 벌써 우리의 강물들이 시체들의 홍수로 /거의 막혀버리며 천천히 계속하여 흘러내리는구나.

  하지만, 나는 죽음보다 더 화나는 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 흑사병과 화염 그리고 굶주림보다 더 나쁜 것에 대해. / 역시 영혼의 재산이 그렇게 많은 것을 강탈한 것에 대해.

    이 시는 30년 전쟁(1618~1648)이 독일 전역을 한참 휩쓸고 진행되던 1637년에 발표됐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21세였다. 전쟁은 시인의 나이가 세 살 때 발발하였고 이로 인해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참사에 대한 경험으로 점철돼 있었다. 시인이 전쟁의 참사 속에 일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20세의 청년이 됐을 때 그가 본 조국은 울고 있었다.

    시인의 극한상황인 30년 전쟁은 주지하다시피 구교와 신교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발발한 전쟁은 30년이나 지속됐고, 전쟁은 도시를 황폐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조국을 살육의 광장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조국의 황폐함이나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분노한다. 그러나 전쟁이나 사회의 문제점이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 놓인 갈등의 벽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의 조국은 울고 있는가. 울고 있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간의 갈등이다. 집단과 집단은 소통과 대화를 단절하고 계층과 계층 간의 양극화 현상만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쳐다보는 그곳에는 항상 서로 다른 계층과 패거리들만이 있을 뿐이다. 종교가 무엇인지, 무슨 신문을 구독하는지, 출신이 어디인지를 물어본다음에야 대화가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 계층 간의 갈등과 패거리 문화가 어떻게 발전될지 생각만 해도 불안하고 무섭기만 하다. 종교인이나 정치인들에게만 떠넘길 일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에게도 주어진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인 것 같다.

서장원 편집기획위원/고려대·독문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