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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문학 전공자의 어학 단상
[學而思] 문학 전공자의 어학 단상
  • 정요일 서강대·국문학
  • 승인 2009.06.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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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중국과 한국의 한문학비평 등 동양의 전통 문학사상을 공부하면서도 유학사상을 터득하는 데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러니 실제 전공은 ‘선비정신’의 추구라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금년 초에 『한문학의 논리』와 『논어 강의』라는 책 두 권을 내게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그처럼 문학 전공자이기는 하나, 어학적인 문제에도 다소 관심이 있다. 그러기에 백년 가까이 계속돼 온 현행 문법 교육에서의 문제점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논문으로 쓰기도 했다. 한문의 어조사 ‘之’字에 관한 문제가 그 하나이며, 『훈민정음』 서문에서의 ‘者’와 ‘놈’의 의미에 관한 문제가 또한 그 하나이다.

    근래에 한ㆍ중ㆍ일 3국에서는 어조사 ‘之’字를 잘못 가르치고 있다. 그런 잘못이 서양의 학술서에까지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예전에 “배우고 때로 익히면”으로 풀이하던 ‘學而時習之’를, “배우고 그것을 때로 익히면”이라고 풀이한다. 어조사 ‘之’字는, 타동사와 자동사의 뒤에서 그리고 다른 경우에도 두루 쓰일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결코 목적어로 풀이돼서는 안 될 글자인데 ‘그것을’ 또는 ‘그를’과 같이 목적어로서의 대명사로 풀이한다. 그로부터 빚어지는 학술상의 오류가 적지 않다. ‘生之’는, 타동사 ‘낳다’로도 쓰이고 자동사 ‘태어나다[자라다]’로도 쓰였던 것이다.

타동사의 뒤에서 ‘之’가 쓰인 ‘愛之重之’는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라고 풀이해야 하며, 자동사의 뒤에서 ‘之’가 쓰인 ‘行之’, ‘往之’,‘逃之’는 ‘간다’,‘다닌다’,‘달아났다’ 등으로 풀이해야 한다.
    한편 근래에 국어 문법 교육에서, 『훈민정음』의 서문에 쓰인 ‘者’와 ‘놈’이라는 말이 ‘것’ 또는 ‘경우’를 뜻했음에도, 그 모두를 ‘사람’이라는 말로 해석하며 잘못 가르쳐 왔다.

앞서 간행된 『훈민정음해례본』(한문본)에 대한 우리말 풀이 『훈민정음언해본』의 서문에, “우리나라의 말이[말과 말소리가] 중국과[중국의 경우와] 달라서 ~ 어리석은 백성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평소에 글로 나타내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이[경우가][놈이] 많으니라.”라는 뜻의 말씀이 있다.

이때에 『해례본』에서의 ‘者’字가 『언해본』에서는 ‘놈’이라는 말로 쓰였는데, 그 ‘者’와 ‘놈’이라는 말이 근래에 모두 일반적인 의미의 ‘사람’을 뜻한 것이었다고 잘못 해석되고 가르쳐지는 것이다.
세종 임금께서, 백성에 대해 하필이면 ‘사람’을 ‘사물’에 빗대어 욕하듯이 쓰는 경우의 ‘놈’이라는 말을 썼겠는가.  

    한문에서 쓰인 ‘者’字가, 반드시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놈’이라는 우리말도, 사람을 사물에 빗대 욕하듯이 쓰인 것이 아닌 경우에는, 대개 사물로서의 ‘것’ 또는 ‘경우’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前者’ㆍ‘後者’라는 말이, ‘앞엣 것’ㆍ‘뒤엣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앞의 경우’ㆍ‘뒤의 경우’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과 같다. 『논어』 「자한」편의 ‘秀而不實者, 有矣夫’란말씀이 “이삭이 패고서도 알맹이가 여물지 못하는 것이[경우가] 있느니라”라고 풀이되는 것도, ‘者’字가 ‘것’이나 ‘경우’의 의미로 쓰인 사례이다.   

    또한 전해지는 『千字文』류 중 『光州千字文』(1575)의 끝에 ‘謂語助者, 焉哉乎也’라는 구절이 있다. 그에 대해 “니ㄹ`ㄹ 위, 말ㅅ?ㅁ 어, 도올 조, 놈 쟈, 입겻 언, 입겻 ㅈ`ㅣ, 온 호, 입겻 야”라는 訓이 달려 있다.
“‘어조사’라고 이르는 ‘놈’[것]들은, 焉ㆍ哉ㆍ乎ㆍ也이다.”라고 풀이된다. 그리고 “요놈[요것]이 나으냐, 조놈[조것]이 나으냐?”라는 말이나 ‘암놈’‘암컷[암+ㅎ+것]’ㆍ‘숫놈’‘수컷[수+ㅎ+것]’이라는 말로써도 알 수 있듯이, ‘놈’이라는 우리말은 원래부터 동식물ㆍ무생물 등 사물을 나타내 온 말이다.

    한편 『훈민정음』의 『해례본』과 『언해본』의 서문 중 뒷부분에는 “사람마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라는 뜻의 말씀이 있다. 이때에 『언해본』의 ‘사람마다’라는 말을 『해례본』에서는 ‘人人’이라고 쓴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구절로써도, 그 앞부분에서 쓰인 ‘者’字와 ‘놈’이라는 말이 모두, 일반 평어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 만할 것이다.

정요일  서강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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