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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영결식 휴강 소회
[學而思] 영결식 휴강 소회
  • 조관홍 동아대·철학
  • 승인 2009.06.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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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금요일 000강의 휴강합니다. 학생 여러분들 각자 의미 있는 또는 경건한 시간으로 채워주길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들의 살아온 시간과 현재 머물고 있는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강의 진도에는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요즘처럼 살벌한 대학 풍토에서 어느 간 큰(?)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휴강이 명강의였던 시절에서야 지극히 당연해 보였을 이 문구가 신선하고 청랑한 느낌으로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학이 직업훈련소쯤으로 전락한 지 오랜 데도 아직 남아 있는 대학의 낭만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아님 세상 돌아가는 꼴이 하수상한데서 오는 자조감 때문일까. 결론은 ‘아니다’였다. 오히려 차갑도록 냉정한 지성이 던져주는 진지한 섬광 같은 빛줄기가 일상과 타성에 젖은 마음의 빗장을 벗겨버렸기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게 불안하고 미덥지 못한 건 어느 시절에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정치라는 허울은 좋은데 언제나 속빈 강정이었으니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엔 언제나 헉헉대고 벅차기만 했다.
지난해엔 필명 미네르바라는 젊은이가 나라 경제 어렵다는 걸 꼬집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무죄 방면되는 해프닝이 일어나더니만 올 해엔 경천동지할만한 사건이 터져버렸다. 직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이라는 형태로. 결코 희화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 이름들이 너무도 낯익다.

200년 전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올빼미)는 황혼이 깃들어서야 날기 시작한다”고.
직전 대통령의 죽음을 둘러싸고 말들이 무성하다. 자살, 사망, 서거라는 표현에서부터 자살의 동기와 정치적 파장, 그리고 자살이라는 행태가 갖는 교육적 문제까지 온갖 평론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한 개인으로서의 국민이었고 또 그것을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인물이었지만, 역사적 개인이며 조금 과장한다면 민족사적 개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필자는 정파나 이념을 떠나 그의 죽음이 갖는 역사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 결코 예단할 수 없는  역사의 문제, 어쩌면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역사의 뒤얽힘이 새로운 차원에서 국가의 운명과 연계돼 전개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헤겔은 이를 이성의 간지라 명명했다. 자유의 의식에 있어서의 진보, 그것을 향한 절대정신의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간사한 자기 구현이라 설파했다.
국민장 기간 동안 500만 명이 조문하고 100만 명이 넘는 추도객들이 십리 길을 마다않고 낯선 시골 봉하마을까지 직접 조문했다고 한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것일까.

단순히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감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국가는 국가다워야 한다는 지성적 결단 때문이었을까.이제 지성인으로서 교수들이 진지하게 숙고하고 답을 주어야 할 때다.

조관홍 동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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