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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자율성 보장하는 ‘재단 운영 독립성’ 확보 시급
연구자 자율성 보장하는 ‘재단 운영 독립성’ 확보 시급
  • 김태승 아주대·사학
  • 승인 2009.06.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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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 출범에 붙여_ 인문학자의 우려와 기대

인문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었던 한국연구재단이 6월에 출범한다. 관련법이 제정·공포됐으니, 통합 재단의 정체성 문제에 대한 논란은 이제 그 구체적 역할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 갈 것이다. 하지만 학술연구지원체계의 독자성을 주장해 온 인문학자들은 통합된 ‘공룡’ 연구재단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사실 인문학계 불신의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예컨대 전체 13명의 한국연구재단 설립위원회 위원 중 인문사회분야의 위원은 5명이고 그 중 인문학자는 단 1명이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에 대한 연구지원이 예산규모에 비해 다루는 영역은 방대해 매우 전문적인 취급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위원회의 인적구성이 인문학에 대한 재단 측의 이해부족을 상징한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재단 측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학계의 의견을 수렴해, 보다 전향적인 체제를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인문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재단운영체제의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연구지원체제의 독립성 확보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학문연구의 창의성과 독립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근대학문의 역사가 입증한다. 재단 운영의 독립성은 연구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특정 분야에 대한 학문의 편중을 시정하고 창의적 학문연구를 격려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생물다양성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문연구의 다양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
연구지원이 특정 관점의 영향력에 좌우돼서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학문연구의 적응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연구지원의 효율을 내세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보다 큰 차원에서의 효율을 억압하는 요소로 작동될 수 있다. 국가정책 등의 측면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별도의 지원체계를 마련하면 되지, 연구재단의 정체성을 효율 중시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효율을 판단하는 기준이 특정의 당파적 관점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효율을 빌미로 연구지원업무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관련법을 살펴보면 통합재단도 연구지원체계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입장은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에 규정된 ‘연구사업관리전문가’제도는 ‘민간 전문가’에 의한 연구지원업무의 기획 등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해석된다. 그러나 그 선정이나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 방안이 알려진 바 없다. 앞으로 그에 대해서 합리적인 방안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기본적으로 연구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관련 학계 추천 등의 투명한 선정절차가 마련되면 될 것이다. 또한 재단 내에서 오랜 기간 전문화된 능력을 발휘해 온 관련 인사들에게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둘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재단운영의 독립성 확보를 전제로 연구지원체제의 전문성과 유연성, 지속성과 혁신성을 조화시키는 방안이 마련돼야한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재단의 연구지원은 기본적으로 개별연구지원을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문학의 경우 대형 프로젝트 연구는 불필요한 행정비용의 증대, 연구자들의 행정부담 가중 등 연구에 몰입하는 것을 저해하고, 특정 주제에 연구자들을 집중시켜 오히려 연구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 위대한 인문학적 연구들은 한 개인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학문적 주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산출됐음을 참고한다면, 인문학에 대한 연구지원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고 본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제 한국연구재단의 출범은 기정사실이 됐다. 부디 치열한 고민을 통해 모든 연구자들이 축복하는 조직으로 새 출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태승 아주대·사학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과 아주대 교무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도시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에서 중국근현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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