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55 (일)
[딸깍발이] 도덕성의 실험실
[딸깍발이] 도덕성의 실험실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 승인 2009.06.01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퀴리 부인(1867-1934)은 1903년에 남편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1911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라듐 등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고 방사능의 성질을 최초로 밝혀낸 결과였다. 그러한 과학적 진보를 기리어 방사능의 단위에는 ‘퀴리’라는 이름이, 화학 원소 중에는 ‘퀴리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발견하고 연구하던 방사능에 과다노출이 돼 1934년 백혈병으로 숨지고 말았다. 실험실에서의 연구를 통해 인류에게 커다란 기여를 남긴 그녀는, 막상 자신의 실험대상의 가공할 힘에 첫 번째 희생자가 된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타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끌던 일종의 ‘도덕성의 실험실’에서 희생당했다고 말한다면 고인에 대한 크나큰 결례이자 망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죽음을 역사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개인적인 일회성 사고의 결과라고 이 사태를 정리하기에는 너무 큰 상실감과 회한이 가슴을 저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누구라도 지적하는 가장 큰 병폐는 바로 다름 아닌 도덕성의 아노미(anomie, 무규범성)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또한 그만큼 급격했던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치전도적 금전 만능주의 아래서 영적으로 불모상태이고, 정치적인 실패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사회적으로는 가치관의 무정부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 시대의 지도적 가치를 목마르게 구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노무현 정부는 도덕적 순수성으로 국민들을 설득해 집권했고, 그 정부의 치적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 도덕적 권위에 힘입은 것이며, 또한 그 정부의 한계로 지적되는 점도 현실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도덕성에 대한 집착이었다고 평가된다. 대통령의 불행도 이러한 도덕적 원칙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덕성은 양면의 날을 가진 칼이다. 심지어그 손잡이에도 날이 서 있다. 도덕성의 칼을 쥔 자는 항상 손잡이에 주는 힘을 조심스레 조절해야 한다.

 
‘법률은 최소한의 도덕’이라 했다. 따라서 법률을 집행하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도 이와 같은 양면성과 위험성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불행한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슬픔으로 망연자실하면서도, 도덕적 가치관을 추구하다 희생당한 대통령의 불행을 안타까워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불행을 야기한 저간의 배경을 짐작하면서 분노하고 있다.
파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팡테옹은 공화국 프랑스의 시민 종교의 성전이다. 입구를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볼테르와 루소의 기념물이 인상적인 이 기억의 전당에, 퀴리부인의 시신이 1995년 그녀의 사후 61년 만에 뒤늦게 남편과 함께 이장됐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의 실험실에서의 업적과 희생을 불멸의 신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우리 정치가 민주주의의 완성을 지향하고 우리 사회가 도덕적 지표의 고양을 지향하는 길고 험한 여정에 있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죽음은 그 모든 구설에도 불구하고 결코 헛된 일이 아니며, 오히려 그의 생전의 치적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도덕성을 한 단계 고양시키는데 역사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될 것이며,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도덕성의 상징으로까지 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유가족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위로 드리고 싶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은,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인 만큼,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적용됐던 법률의 잣대는 그 법을 집행하는 사람까지 포함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집 아저씨 같던 대통령을 떠나보내며, 우리는 고인이 남긴 업적과 교훈을 명심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삼가 편안한 영면을 기도한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