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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노무현의 遺産
[대학정론] 노무현의 遺産
  • 교수신문
  • 승인 2009.06.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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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자 ‘대학정론’에서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검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피의자로 지목해 함부로 소환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國格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며, 노무현과 그의 추종자들도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지는 이른바 ‘민주화 과정’에 일익을 담당해왔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대한민국은 아직도 20년 전 권위주의 정치 그대로라는 현실에 뒤늦게 눈뜨고는 깊은 좌절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너는 도대체 대통령으로서 여태 뭘 했느냐. 이것도 다 네 책임이다’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의 투신자살은 자기가 수행해온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허무와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왔던 ‘대한민국=민주공화국’이란 장밋빛 이미지가 전부 허깨비라는 절망과 좌절로 인한 것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하나다. 그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도 뒤늦게 깨달은 냉혹한 현실, 1987년 이래의 민주화 과정은 허깨비였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흉계와 폭력이 난무하는 권위주의 국가라는 자각이다. 도대체 어떤 연유로 지난날 20년간 진척시켜온 민주화 과정이 전부 도로 아미타불이 됐는가. 그 이유를 찾아 고치지 않으면 그의 투신까지도 헛된 죽음으로 끝날 것이다.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검찰을 독립시키면서 정작 필요한 검찰권의 민주적·사회적 통제를 위한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검찰권이 사유화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 결과 검찰은 정치와는 무관하게 특정 집단의 항구적사유물로 변질됐고, 특정집단이 지배하는 무소불위의 검찰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차라리 독립시키지나 말았으면 국내정치가 바뀌면서 검찰도 환골탈태할 수 있었겠지만 정치로부터 독립시켰기 때문에 정권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특정 집단의 이익에만 지속적으로 봉사하게 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독립시킬 줄만 알았지 그것을 어떻게 민주적 방식으로 사회가 견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던 결과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생활에서 가장 절박한 문제였던 경제 민주화를 도외시한 점이다. 서민들을 돈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시장경제원칙을 지키면서도 돈의 횡포만은 통제할 수 있어야만 했다.
화폐 발행과 공급경로는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이기 때문에 사회가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킨다는 것이 화폐 발행과 공급경로를 국내정치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특정집단이 항구적으로 사유화할 수 있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빚었다. 정치권력은 바뀌어도 경제권력은 그대로였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자신들과 동일한 정치집단이 하면 쌍수로 환영하면서도 다른 정치집단에서 간섭하면 시장경제를 왜곡시킨다는 이유로 조직적으로 저항하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과 금융이 사유화됐을 때에는 어떤 대통령도 그들의 노리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그래서 더 서러워하고 있다. “‘달숙아, 너는 왜 슬퍼하니? 내는 노무현이를 잘 알지도 못하고 정치에도 관심없다. 그래도 내는 노무현이 저리 간기 너무 가슴이 아프다. 달리 안 된 게 아니라 가난하게 나서 고생만 하다가 제 식구들 살리자고 벼랑에서 뛰어내릴 때 그 심정이 어땠겠노. 근데 그거보다는 앞으로 달숙이 너그들 살 일이 막막해서 더 미치겠다.

(중략)  머리가 비상해가 판사나 된 노무현이도 빽 없어가 저래 꺾이는데 너그들은 앞으로 어째 살거고? 부모 돼 자식 끌어주고 올려주고 해야 되는데 이거 밖에 못 돼 너그한테 정말 미안하데이……’ 그 말을 들은 저는 베란다에 서서 아버지를 붙들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건 부모님이 사과하실 일도 아닌데. 저도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희망을 노통에게서 봤던 때문이에요.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도 바르게 소신을 갖고 열심히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는 거, 그 구체화된 형상이 노통이었는데…. 슬프다기보다 절망해서 넋을 놓고 울어댔어요.”(한 추모 사이트 글에서)

이채언 논설위원/전남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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