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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외도와 모험, 경계 넘나들기
[學而思] 외도와 모험, 경계 넘나들기
  • 교수신문
  • 승인 2009.05.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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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사회에서 학제간 연구가 권장되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학문 영역을 지키면서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협력할 경우다. 교수가 자신의 학문 분야를 넘어 타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을 건드리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나 타 분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불문학자가 한국 영화를 분석했을 때나 영문학자가 한국 문화현상을 분석했을 때 논문을 게재할 마땅한 학술지를 찾지 못해 곤란해 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이것은 경제학자나 정치학자 혹은 다른 어떤 학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문이 전문성이 있어야 하며, 학자가 한 분야를 일관되게 연구해야 깊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타 분야와의 교류와 융합이 학문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자명하며, 이러한 학문 간 교류가 한 사람의 학자가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개인적으로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택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사회학이라고 해서 경계 지키기의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며, 이른바 ‘외도’하는 사람을 좋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워낙 넓다 보니 웬만한 주제는 모두 ‘사회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방법론도 다양하므로 사회학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도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를 두고 사회학이 체계가 잡혀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음악사회학, 스포츠사회학, 화폐사회학 등 무엇이든지 앞에 붙일 수 있는 잡식성 학문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하지만 나는 체계가 덜 잡혀 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학이 좋다. 너무 많은 이론과 방법론이 공존하다 보니 특정한 이론이 주류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이를 장점으로 본다.

또한 영역이 한정되는 경향이 있는 학문보다는 영역을 넘나들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계층, 계급 및 자본가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왔었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관심 분야가 크게 바뀌었다. 근현대 100년간 한국 문화변동에 대한 분석이 주된 관심사로 확장된 것이다. 일상생활사와 관련한 문화변동이 주된 연구 영역이 되다 보니, 그 연구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게 됐다. 구체적으로는 복식 변화에서 식생활의 변화, 의례의 변화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근현대 문화변동에 관한 것이면 얼마든지 그 영역은 확장될 수도 있다.
학문 간 교류의 시도라는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연구 관심사의 변화로 시작했지만, 불가피하게 다른 분야와 연구를 통해 교류하게 됐다.

타 분야의 연구 성과를 보면서 사회학적 관점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계층 연구와 복식 변화 연구, 식생활문화 연구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계층 연구에 익숙한 연구자의 시각에서는 복식 변동에서의 계층별, 성별 차이가 쉽게 눈에 들어온다.
식생활의 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며, 특정 영역에서의 변화의 특성이나 문제의 핵심을 읽어 내는데 사회학적 관점이 유용함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는 다른 학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 학문 영역에서 개발해 놓은 이론과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는 잘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리라. 경계 넘나들기가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근거인 셈이며, 적극적으로 시도돼야 할 이유이다.

물론 학자가 여러 관심 영역을 갖는 것은 모험이며, 모험에는 그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새로운 영역을 새삼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그 결과 연구 성과가 빈약하기 쉽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훈련받은 학문이 다른 분야와 만나 조그마한 성과나마 낼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과 ‘외도’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관심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일관되게(?) 연구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다.

공제욱 상지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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