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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스케일의 법칙
[딸깍발이] 스케일의 법칙
  • 김도진 편집기획위원 / 충남대·재료공학
  • 승인 2009.05.18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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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에 속한 한 행성인 지구에서 생물이 진화했고, 그 과정에서 햇빛을 대상과 상호 작용시켜 대상의 형상과 색깔을 인식하도록 눈이 만들어졌다. 자연과학에서는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 대상과 직간접으로 접촉시키는 수단을 探針이라 하는데, 눈은 시각적인 탐침, 귀는 소리에 대한 탐침, 혀는 맛에 대한 탐침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태양이 내뿜는 여러 가지 파장의 빛 중에서 可視光線, 즉 400~700 나노미터 길이의 파장만을 인식할 수 있도록 진화했으며, 서로 다른 파장을 색깔로 구분해 인식하는 視細胞가 특징이다. 그런데, 인간의 시세포는 가시광선에만 반응해 이 보다 크거나 작은 파장인 적외선이나 자외선과 반응하지 않으므로 이들을 인식할 수 없다. 사실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등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인 주관적 용어이다.

한편 자연과학의 연구에서도 여러 가지 대상의 특성을 알아내기 위해 많은 기계적, 광학적, 전자기적 탐침들이 고안되고 있다. 예컨대 결정성 물질은 원자들이 0.1 나노미터 정도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데 X-선을 매개체로 해 원자의 배열을 알아내는 X-선회절법이 있다. 이는 X-선을 물질에 쏘여 원자와 반응시킨 후 반사되는 X-선을 분석하는 방법인데 사용하는 눈 또는 시세포는 0.1 나노미터 파장의 X-선을 검출할 수 있어야 한다.

X-선회절법은 그 원리를 발견한 사람을 기억해 명명한 Bragg법칙으로 요약되는데, 이 법칙은 원자간 거리 이하의 파장을 갖는 전자기파인 X-선을 사용해야 물질의 원자배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즉, 0.1 나노미터 정도의 파장인 X-선만이 0.1 나노미터 간격의 원자배열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자기파란 전기장과 자기장을 함유하는 파동의 특성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우리 생활 주변에서 보는 TV, 방송, 핸드폰 등의 송수신파와 햇빛 등이 모두 전자기파이다. 이들 전자기파는 전체적인 특성은 동일하고 다만 파장의 길이가 달라 다른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동일한 형태의 전자기파이지만 수백 나노미터의 파장을 특성으로 하는 햇빛을 물질에 쏘여서는 0.1 나노미터 스케일인 원자배열에 대해 탐지할 수 없다는 것을 Bragg법칙은 시사하고 있다. 즉, 햇빛 파동은 그 파장 보다 매우 작은 스케일인 원자배열 정보와 반응하지 못한다.

일반화하면 모든 탐침은 그 탐색하려는 대상과 유사한 스케일을 갖는 경우에만 반응, 또는 상호작용(interaction)을 하고, 스케일이 크게 차이가 나는 대상과는 반응하지 않는다.
코끼리가 걷다가 토끼를 밟았다고 할 때 토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코끼리 발과 토끼가 상호작용을 해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 코끼리 발이 개미를 밟았다 해도 개미와 상호작용할 확률은 작을 것 같다. 서로 비슷한 스케일이어서 반응이 일어난 것이고, 스케일 차이가 커서 반응을 피할 수 있었다. 영화는 정지 화면을 빨리 돌려서 0.1초 이하의 시간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의 눈을 속여서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와 같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서로 작용하는 대상의 질량, 길이, 시간의 스케일을 알면 이해하기 쉽고, 실험과학에서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스케일의 탐침을 고안하는 것이 중요할 경우가 많다. 이를 스케일 법칙이라 명명한다면 이는 중요한 자연 법칙 중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인간사회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그 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권투 경기 등에서 체급별로 시합을 진행시키는 이유가 상호작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들끼리는 서로 엉키면서 치고받으며 싸울 수 있지만, 아이들이 부모에게 같은 양태로 싸움을 걸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는 思考의 스케일을 하나 더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스케일의 법칙을 혹자는 이렇게 일갈한다. ‘똑같은 놈들 끼리 싸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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