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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詩學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
[딸깍발이] 詩學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
  •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독어독문학
  • 승인 2009.05.11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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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는 야만인이다. 그는 역시 그 사람이리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는 경제위기에 빠져든다. 2008년 8월 독일의 중견작가 델리우스가 어느 수상식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괴테가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를 ‘역시 그런 사람’이라고 지목까지 해가며 야만인이라고 규정했다면 괴테보다 200여년후의 작가인 델리우스는 괴테의 야만인을 경제위기의 원인제공자로 탈바꿈시켰다. 그것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들에 대해 무엇인가 불만족스럽게 말하고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이 지닌 공통점이다.

  시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자는 야만인일까? 머리가 약간 꺄우뚱해지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왜냐하면 시학에 대한 소양은 없고, 그저 돈만 아는 자들을 보면 ‘저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이 쉽게 튀어나오고, 더 나아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은 자가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아 그저 사람을 깔보고 폭압을 일삼는다면 ‘저 금수만도 못한 자’라는 옛 성인의 말이 누구에게나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고 한들 설마 경제위기에 빠져들까? 글쎄, 그건 좀 그렇다. 어느 누구라도 쉽게 수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라면 몰라도. 그런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작년 8월에 독일의 한 작가는 왜 200여 년 전 괴테가 사용한 문장을 그처럼 되 새겼을까? 여기에 숨겨진 비밀의 열쇠는 바로 역사적 인물인 ‘괴테’ 자신과 그가 말하는 ‘시학의 음성’에 보석처럼 박혀져있다. 

  괴테는 주지하다시피 독일문학사에서 고전주의를 확립하며 독일의 정신사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괴테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독일인의 가슴에 스며들었으며 그들이 한 인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 준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에 속한다. 여기에는 물론 칸트나 헤겔 그리고 베토벤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인들에게 괴테는 이 세상을 같이 살고 간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시성이었다.

  괴테는 우선 한 인간이다. 그는 타고난 시인이기도 하지만 만들어진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세계적인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독일어 정화운동과 인문주의 이래로 태동한 독일의 인문학 정신 때문이었다. 이것을 집약하는 말이 바로 괴테가 말하는 ‘시학의 음성’이다.

  진부하긴 하지만 ‘시학의 음성’을 이해하기 위해 시학이란 무엇인가 되짚어 보자. 시학이란 기본적으로 시를 짓는 기술로 일명 ‘시작법’이라고도 한다. 시작법이란 곧 하나의 체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학의 체계는 어떻게 정립되었는가? 시학은 무엇보다도 서양 전통 수사학을 기본 바탕으로 발달됐다.

  수사학이란 한마디로 말을 잘하는 기술이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을 잘하는 그 자체뿐만 아니라, 생각을 분명히 하고, 글을 정확히 쓰고, 세상을 여유 있게 혹은 우아하게 살아가는 기술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사학이란 단순히 기술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것은 세상만사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인간이 배우고 터득해야할 자연의 법칙에 해당한다. 수사학은 역사적으로 문법학, 논리학과 더불어 인문학을 구성하는 출발점이었다. 시학은 수사학과 자매지간이다.

  시학은 수사학을 바탕으로 피어난 꽃이다. 그러나 꽃은 단순히 수사학만의 덕이 아니다.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 18세기 중반 이후는 감정이 이입되었고 그 다음 세기는 냉철한 사회비판의 과정을 겪었다.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는 야만인이다. 시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는 경제위기에 빠져든다. 동감하고 싶은 말이다. 좀 더 사족을 붙여본다면 인문학의 음성을 듣지 않는 자는 어떤 자들일까? 그들은 역시 그 사람들이리라.

서장원 편집기획위원 / 고려대 독어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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