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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화려한 한복의 쓸쓸한 현존
[문화비평] 화려한 한복의 쓸쓸한 현존
  • 이옥순 서강대·인도근대사
  • 승인 2009.05.1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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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 든 5월이 되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쩍 생각난다. 지난 주말엔 옷장에 고이 모셔둔 어머니의 두루마기를 꺼내 입어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잠시 달랬다. 고백하건대,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한복이다. 유학 시절에 갑사로 만든 노랑저고리에 연분홍 치마를 입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다가 귀국한 이후, 바쁘고 복잡한 서울생활에서 한복은 내게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에 사는 대다수 한국인이 한복을 일상에서 잊고 지내는 것이 현실이다.

洋食, 洋屋처럼 洋服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으로 자리를 잡아온 우리나라에서 한복은 오늘날 결혼식과 같은 각종 행사의 예복이나 외국인이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한복의 운명을 보면 전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전통복장을 고수하는 점에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나라가 인도이다. 영국 신사들이 약 200년간 통치한 인도의 거리에는 오늘날에도 전통적인 복장이 넘쳐난다. ‘세계최대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눈에 나지 않으려고 양복이 아닌 전통복장을 입고 생활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도시에서 울긋불긋한 전통의상을 펄럭이며 다니는 사람들도 대개는 인도 여성들이다.

우리가 근대 이후에 일사분란하게 서구화의 노정을 달려간 것과 달리 인도의 근현대는 ‘발전’과 ‘자기문화의 보존’이라는 경계를 잘 걸어갔다. 자기의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서양에 있는 산과 강의 정보를 줄줄이 꿰던, 인도의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서양의 것을 전적으로 수용한 사람들은 결코 인도 사회의 주류에 들지 못했다. 인도적인 것에 서구적인 것을 통합하는 방식과 삶의 핵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영역의 전환을 통해 인도의 문화는 생존해왔다. 전통복장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에서 법률을 공부한 '영국신사' 간디는 식민화와 서구화를 부인하고 가난한 농민과 일체감을 갖기 위해 양복을 벗어던지고 농민의 옷차림을 택했다. 그는 1931년 런던의 원탁회의에 참석해 버킹엄 궁전을 방문할 때도 웃통을 드러내고 허리만 가린 농민의 옷차림에 누덕누덕 기운 숄을 걸쳤다. 영국의 왕 조지 5세는 종아리를 드러낸 간디의 ‘무례한’ 복장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간디는 몰려든 기자들이 ‘당신의 옷차림’에 대해 한 말씀을 하라고 부탁하자 “왕이 내 몫까지 입었잖소?”라고 대꾸했다.

인도를 마뜩치 않게 여긴 영국의 처칠은 “만약 일찍이 영국 최고법원의 변호사로, 현재는 선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간디가 무례하게 반나체로 총독의 궁전에 당당히 들어와 영국황제의 대표와 동등한 조건으로 예비교섭을 진행 중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실로 전율할 만한 일인 동시에 구토를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영국을 닮지 않은 간디의 ‘너무도 인도적인’ 복장을 못마땅해 했다.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동시대 일본의 식민지 조선의 ‘모던보이’들이 처칠과 같은 입장이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1931년 9월14일자 동아일보는 간디가 “반나체로 런던에 입경했다”고 보도했고, 다른 지면의 다른 필자들은 “무례한 반나체의 인도인” “영국의 쟁쟁한 정치가들이 훌륭한 차림으로 출석한 원탁회의에 간디는 야인 그대로의 모양으로 참가하였다.”고 적어서 서구복장=문명, 인도복장=야만으로 이해했다. 양복을 입은 서구인을 정상으로, 그들에게 지배받는 인도인의 옷차림을 비정상적으로 간주한 우리나라에서 단기간에 한복이 사라지고 서구식 복장이 대세가 된 건 당연한 귀결이다. 100년 뒤에는 세계화와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세계 언어의 30퍼센트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사라지는 것이 언어만은 아닐 것이다. 청바지와 티셔츠의 인기를 보건대, 여러 나라의 독특한 전통의상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촌스럽게’ 전통복장을 애용하는 인도는, ‘다 똑같은 옷차림’을 하는 세계 문화의 주류를 위해 ‘지방주의’를 보존하는 아름다운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어쨌든 문화는 역사의 저편이 아닌 이편에 살아남아야 하지 않는가. 한복이 살아남길 기대한다.

이옥순 서강대·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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