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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무의미의 끝
[문화비평] 무의미의 끝
  • 박준상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철학
  • 승인 2009.05.0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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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스웨덴 영화감독은 우리에게 접근할 수단이 없는 미지의 세계였고, 그의 작품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신비에 쌓여 있는 예술 영화의 대명사였다. 그의 영화들에는 지금도 항상 ‘심오한’, ‘형이상학적인’이라는 형용사들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만일 한 독자가 그의 자서전 『마법의 등』(민승남 옮김, 이론과실천, 2001)을 펼쳐 본다면, 그와 그의 작품에 부가된 이미지와 정 반대의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이 위대한 예술가는 위독한 아버지를 찾아가보라고 간곡하게 권유하는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다가 극장에서 따귀를 맞는 패륜아로, 탈세 혐의로 경찰에 쫓겨 화장실에 숨어 있는 겁쟁이로, 한 번의 육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비열하고 수치스러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호색한으로, 자신의 일과 자기 자신에게만 광적으로 사로잡혀 주위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나타난다. 우리는 베리만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병적이고 가련한 그 주인공과, 그가 만든 인간과 존재의 심연을 탐색하는 작품 사이의 괴리에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자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이 ‘한심한’ 작자와 잉마르 베리만이라는 거장은 같은 인물일 수 있는 것일까.

예술가를 꿈꾸고 있는 혹자는 그의 자서전을 읽고 위대한 예술가도 이렇게 결점 많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대한 좋게 보아, 우리는 ‘어딘가 병적이고 비정상적인 마음의 불구가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렇게 전혀 자신을 꾸미지도 않고, 조금도 치장하지 않은 자서전을 거의 찾기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저자는 위악적으로 자신을 그리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이 책의 어조는 사드의 무감각(apathie)과 냉혹한 조소어린 유머에 다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하나의 자서전이 그 저자가 갖는 사회적·역사적 권력 바깥에서 공감을 얻으려면,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한마디로 베리만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스스로를 무의미한 ‘똥’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책은 결국 어떤 차가운 침묵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며, 그 이후에 묘한 감동이 남는다. 이 책의 내용에서 어떤 아이러니를, 역설적 윤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분명 인간 베리만에게서는 배울 점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그것을 덮었을 때, 사회적·규범적 윤리로 환원될 수 없는 ‘예술의 윤리’(‘예술가의 윤리’도 아니고 ‘예술의 윤리’)를, 윤리 아닌 윤리를 내뱉는다.

즉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 아닌 예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그래도 어쨌든 모든 미(심미성) 이전의 예술적 윤리는, 예술가라는 자아가 가혹할 정도로 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 따라서 예술가가 예술가가 아닌 자로 될 수 있는 솔직함이라는 것. 단순히 심미적인 것이 결코 아닌 그것은 무의미의 끝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위엄 있고 정의롭게 보이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과 고상하고 선한 학자들과 감상적이고 순수한 예술가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냉혹함은, 에누리 없음은 언제나 예술의 기준이다.

 

박준상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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