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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대한민국의 國格
[대학정론] 대한민국의 國格
  •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 승인 2009.05.0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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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청사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고 경남 김해를 떠나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이튿날 새벽 2시께 풀려났다. 나는 학창시절 박정희의 유신헌법 하에서도 윤보선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그것도 내란음모집단의 수괴혐의로 군사재판을 받았을 때 군사법정의 재판관이 기립자세로 재판을 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록 大逆 罪人이라도 전직 국가원수신분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구나! 라는 것을 배웠다. 지금 자라는 젊은 학생들이 오늘의 이 재판을 보고 과연 무엇을 배울까. 

전직 국가원수가 아닌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검찰이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사람을 오라거나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언론도 똑같다. 마치 그런 행위가 당연한듯‘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검찰의 용맹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의 인권수준이나 민주의식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또 거기에 침묵하는 이 나라 지식인들의 수준을 어떻게 가늠할까.

수년전 TV드라마였던 ‘판관 포청천’을 보면, 관직에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의 범죄혐의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가며 수십 차례에 걸쳐 방문조사로만 수사하는 것을 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현대적 민주국가라면 일반인들에 대해서까지도 바로 이런 식의 대접을 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전직 국가원수마저도 ‘혐의’만 있으면 함부로 오라 가라해도 당연시 한다. 검찰은 대한민국의 헌법에 보장된 인권을 밥 먹듯이 유린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사람에게도 인격이란 것이 있듯, 나라에도 국격이란 것이 있다. 인격도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렸듯이 국격도 결국 그 나라 스스로가 어떻게 하느냐 나름에 달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직 국가원수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국격이 검찰의 손에 의해 형편없이 훼손됐다. 이른바 시민단체들과 언론도 거기에 동조해 당연히 범죄혐의가 있으면 검찰소환에 응해야 한다는 투고, 100만 달러의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 침묵하는 것까지도 못마땅해 하는 투다.

말 그대로 그동안 마음으로 빚진 숱한 사람들에게 돈으로라도 얼마씩 성의표시를 하느라 썼을 수도 있고, 자기를 보좌하느라 수고해온 아래 사람들에게 석별의 정으로 몇 푼씩 나눠주었을 수도 있으며, 아들 유학비용으로 썼을 수도 있다. 또 사회단체에 익명으로 기부했을 수도 있다.  그런 것 묻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전직 국가원수로서 체통을 지키려면 물론 큰 액수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는 안 밝히는 게 더 좋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동료교수 한 분은 나의 이런 얘기에 정치적 보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일단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국내정치에 대해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인터넷을 통해 계속 발언을 하고 국내여론에 영향을 주려고 하니까 입을 막기 위해서도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민주주의2.0’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그 나름대로는 시민사회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그는 노력했다. 나는 그것을 그가 재임기간 동안 저질러 놓은 몇 가지 잘못에 대한 속죄행위라고 보았다.

야당과 미국의 압력 때문에 대북송금특검을 하느라 對北 창구를 닫게 만들었고, 한미 FTA와 이라크파병을 추진함으로써 지지층을 대거 이탈시켜 결과적으로는 정권 교체를 도왔다. 바로 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비록 정권은 보수층에게로 넘겼지만 앞으로 정부가 속으로는 옳은 정책을 취하고 싶어도 국내외 압력에 의해 자주적이거나 민주적이지 못한 정책을 취하게 될 때 아래로부터의 여론을 움직여 제대로 길을 잡도록 새로운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보려고 한다고 보았다.

물론 나는 그것을 멍청하다고 보았지만 그는 우리 사회가 그래도 원칙과 상식만 바로 서면 괜찮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제는 그 자신도 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도 뒤늦게 깨달았을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원칙과 상식만 바로 서지 못한 게 아니라 틀 자체가 잘못된 나라이고, 건국 이래 60년이 지났건만 國格은 여전히 뒤틀려 있음을.

이채언 논설위원 /전남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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