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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평가와 반성 그리고 책임
[문화비평] 평가와 반성 그리고 책임
  •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9.04.27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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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두지는 못하지만 나는 바둑을 좋아한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바둑보다는 바둑을 두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바둑고수들은 침착하고 진중하며, 묘한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바둑이 다른 게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에는 복기라는 매우 독특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긴 사람이야 그 복기 과정조차도 유쾌하겠지만, 시합에서 억울하게 진 사람이 그런 과정에 묵묵히 참여하는 것을 볼 때면, 어떤 경우에는 패한 사람이 더 존경스러워 보이는 느낌도 받는다. 패배의 아픔을 곱씹으며 복기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통해 산 자들이 결합을 하듯, 바둑기사는 복기라는 쓰라린 제례를 통해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각 대학에서 더 이상 학부제를 하지 않아도 용서가 된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학부제. 전국적으로 학부제가 권고되기 시작된 것은 1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교육당국에서 뿌려대는 강제적(?) 권고, 형식과 내용이 이미 규정된(?) 자율, 이런 따위의 강제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고 노골적인 표현으로 전달되면 좋겠다. 그래야만 서로 간의 소모적인 신경전을 그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제가 시작될 당시, 교육관련 고위인사가 오셔서 학부제에 동참하면 “놀라울 정도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다. 당시 부실한 대학 경쟁력은 이기적인 ‘학과 중심제’에 있었기 때문에 학부제가 최선의 답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당국의 권고 사항을 섬겨서 학과들 간의 어처구니없는 짝짓기가 시작됐다.
산업공학과가 조선해양공학과와 학부제로 묶이고. 당국이 말한 놀라울 정도의 지원이란 지나고 보니, 상대성 이론으로 밝힐만한 고차원적인 지원이었다.

불행히도 필자는 학부제를 거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서 그 이기적 학과중심에서의 문제가 어떻게 학부제로 해결이 됐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런 보고서나 자료를 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이것도 학력평가 지역별 결과와 같이 심오한 비밀인가, 궁금할 따름이다. 허나 또 다시 학과제를 해도 된다니. 그간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학부제에 무슨 몹쓸 병이라도 생긴 것인가, 그간의 현장을 지켜온 한 일원으로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 동안 그렇게 키워온 학부제에 무슨 곡절이 있는지 알려주시길 이 글을 통해부탁드린다. 궁금한 것이 어디 이것뿐이랴, 그 동안 논술고사를 한지도 십여 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우리 학생들의 논술실력이 얼마나 올랐는지, 대학을 일 년 내내 어수선하게 만든 각종 수시모집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다양한 계층의 선발의 결과는 또 어떠했으며, 특정과목 우수자, 각종 경시대회 우수자는 또 어떠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반성할 자료와 기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평가나 반성이 없는 일의 도모란 로또를 기다리며, 정신줄을 놓은 채 무한시행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다시 입학사정관 바람이 입시에 몰아친다. 어떤 말도 안 되는 음모론자의 주장에 의하면 그것은 미취업 고학력자들의 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이라고도 한다. 어찌하든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더 나은 제도가 있으면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이전 제도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반성부터 선행돼야 할 것이다. 특히 교수들에게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은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된다.

교육당국은 막연한 유행을 조장하지 말고, 입학사정관 제도가 입시에서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지 설득력 있게 말해주어야 한다. 사교육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 입시 제도를 고친다는 지겨운 유행가 같은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안했으면 좋겠다.

평가와 반성도 있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책임문제까지도 거론돼야 한다. 흔히들 정책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구성원이 합의해준 정책에만 국한된 경우이다. 교육당국은 헛된 이념의 관성에 끌려 다니지 말고 최전선 이등병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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