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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치명적인 유혹
[學而思] 치명적인 유혹
  • 서도식 서울시립대·철학
  • 승인 2009.04.2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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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대학동기가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누가 자기에게 전공이 뭐냐고 물으면 자기는 꼭 ‘철학의 諸문제’라고 답한단다. 그가 도통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아직 전공 공부가 덜 돼 겸손치례로 그러는지는 내가 그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 전공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학식이 꽤 깊다고 평판 받는 그가 그런 말을 하니 시쳇말로 ‘뭔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그게 뭘까. 그 친구가 자기 말의 참뜻을 직접 피력하지않는 한 나로선 알 도리가 없지만, 기이한 것은 ‘철학의 諸문제’와 같은 답변이 철학 말고 다른 분야에선 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령 물리학 분야에서 “당신의 전공이 뭐요?”라는 물음에 “내 전공은 물리학의 諸문제요.”라고 답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겠는가. 십중팔구 자신의 프로페셔널리즘이 의심받을 게 뻔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철학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식의 대답이 통한다. 통할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좁은 한계를 뛰어 넘어 이른바 도통의 경지에 들어선 게 아닌가 하는 과분한 칭송을 받기까지 한다. 뭐, 이쯤 되면 자기 전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용감하게 “철학의 諸문제”라고 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성싶다. 그래도 있다면 나는 그를 ‘大哲’이라 불러주고 싶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정말로 ‘철학의 諸문제’를 풀려고 시도한 플라톤 같은 위대한 哲人에게나 어울릴 듯하지만. 플라톤과 같은 大哲에게는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을 넘어 ‘뭔가 확실히 있는 것’까지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大哲이고 小哲이고 다 필요 없고 그저 ‘철학자’로만 불러줘도 황송할 나 같은 부류가 감히 ‘철학의 諸문제’를 입에 올리는 건 어쩌면 철학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끔은 이같은 유혹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大家가 못되는 내가 “철학의 諸문제요!”라고 답할 경우, 여기엔 ‘뭔가 확실히 있는 것’이 없을지라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것’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철학의 諸문제’라는 대답이 ‘뭔가 있어 보이는’ 까닭은 철학이 탐구하는 모든 문제가 사상이나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닌 실천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삶의 세계의 모든 것들이 ‘철학함’의 대상들이다. 세상이 변하느냐 안 변하느냐 하는 고매한 철학적 논의도 따지고 보면 다 사람 사는 실천의 문제로 귀착된다. 철학자의 戀愛 상대가 ‘know-that’냐 ‘know-how’냐 하는 논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둘이 합쳐져 날 것의 싱싱한 세계가 제기한 ‘철학의 諸문제’의 해결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이처럼 生生한 諸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찾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당신 전공이 뭐냐는 물음에 ‘철학의 諸문제’라고 답하는 건 정말로 ‘있어 보이지’ 않는가!학생들로부터 가끔 이런 대답을 듣는다. 아니, 나부터가 이렇게 답하는 경우도 있다. “내 전공은 하버마스요.” “내 전공은 현대유럽철학이요.”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하버마스 사상을 골수까지 다 파먹은 프로페셔널이 됐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철학을 끝장낸 것인가. 현대유럽철학자들의 사상과 이론을 남김없이 섭렵했다고 내 철학이 종말을 고했는가. 이처럼 철학의 빈곤을 드러내는 대답도 없을 성싶다. 아, 이 얼마나 ‘없어 보이는’ 대답인가!그 친구의 말이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을 자아낸 까닭은 그로 인해 지금껏 ‘강단 철학’만 해온 나의 깊은 트라우마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쓰여진 것에서 억지로 건져낸 문제들과 쓰여지지 않은 것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문제들, 나는 지금까지 어느 쪽과 씨름을 해왔는가. 나는 그 동안 특정 사상이나 이론의 문제들을 사유했는가, 아니면 ‘철학의 諸문제’를 성찰했는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진짜 ‘철학’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나는 당장 강단을 뛰쳐 나가 ‘노변 철학’을 감행할 용기도 없다. 하도 답답해서 속으로만 자문자답을 되풀이할 뿐이다. ‘당신의 전공은 무엇인가.’ ‘내 전공은 철학의 諸문제요!’ ‘철학의 諸문제란 말이요!’

서도식 서울시립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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