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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정직한 글쓰기와 인용
[문화비평] 정직한 글쓰기와 인용
  •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 승인 2009.04.20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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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6월 28일부터 발효된 전부개정 저작권법은 보호받는 저작물을 가리켜 기존의 “문학ㆍ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라는 정의 대신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문학ㆍ학술ㆍ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면 모두 저작물로 인정함으로써 그 범주를 크게 넓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로 우리 법원의 판단은 저작권법상 창작성이란 완전한 의미의 독창성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줄곧 견지해 왔다. 창작성이란, 단지 어떠한 작품이 남의 것을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의 독자저작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어서,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단지 저작물에 그 저작자 나름대로의 정신적 노력의 소산으로서의 특성이 부여돼있고 다른 저작자의 기존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함으로써 창작성의 정도를 높게 요구하지 않는 입장을 보여왔다.

한편, “거인의 어깨 위 난쟁이는 거인보다 멀리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창작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저작물을 모방하거나 引用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말이다. 다만 난쟁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거인의 허락을 받아야 하거나 거인에게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거인과 난쟁이로 비유되는 저작자들이 혼재하는 우리 학계와 예술계에서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이유는 무엇인가.

문학평론가 정과리 교수는 비평집 『네안데르탈인의 귀환』에서 “나는 최근 한 스무 편 되는, 임자가 다른 평론들을 검토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글들이 프랑스의 한 정신분석학자를 원용하고 있어서 매우 놀랐다. (중략) 그 사람의 글이 번역되지 않은 채 해설서들이 난무하는 상황이니, 짐작건대 ‘그가 말했다고 한다’고 써야 할 것 같은 대목에서 한결같이 ‘그는 말했다’고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올바른 ‘인용’이 부재한 우리 상황을 꾸짖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학계를 통틀어 통용되는 주지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객관적인 학문적 결과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은 그만큼 인문ㆍ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주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뜻일게다.
이런 학계 현실에 대해 ‘지식의 불확실성’을 주장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는 “어떤 새로운 과학적 주장이 유효하거나 심지어 타당한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지식의 복잡한 전문화가 끝없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각각의 특정한 과학적 진술에 대해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제출된 증거의 질이나 자료 분석에 적용된 이론적 논거의 엄밀성을 개인적으로 합당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사리에 맞다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내 스스로 “우리는 저명한 권위에 의해 축적된 증거들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한다. 이어 “우리는 인용된 학자나 저널의 증언에 대한 신뢰도를 어디에서 얻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그것은 기록된 형태로는 좀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그보다 높은 등급의 신뢰도에서 그런 신뢰도의 기준을 구한다. 만약 우리가 아는 ‘진지한’ 사람이<네이처>가 일류이고 믿을 만한 저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고 믿는다.

얼마나 많은 암묵적인 신뢰의 등급들이 서로서로에 기초를 두고 형성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물며 내용으로서의 질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형식에만 얽매이거나, 그러한 형식마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는 글쓰기의 결과로 탄생한 연구 성과라면 그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연구논문에 있어서 정확한 글쓰기와 더불어 ‘인용’한 자료의 정확한 출처명시가 필요한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고위층 물갈이 인사가 단행될 때마다 후보자의 연구 성과에 대한 시비 중 으뜸이 ‘표절’이라는 사실, 곧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연구행태가 학계에 고스란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초ㆍ중ㆍ고교생의 교육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는 사범대와 교육대에 저작권 관련 과목을 적극 設講해야 한다. 대학에서는 모든 전공에 걸쳐 교양필수과목 또는 전공필수과목으로 가칭 ‘저작권론’을 이수하게함으로써  더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학생들이 건강한 문화인, 당당한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김기태 세명대·미디어창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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