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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깃발
[딸깍발이] 민주공화국이라는 깃발
  •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 승인 2009.04.2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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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는 언명은 그 선언적 의미를 훨씬 넘어선 실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 성립 때부터 확인된 이 원칙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시 헌법 제1조에 표명돼 우리나라 국체의 본질을 선언했다. 그러나 공화국의 이념에 대한 실천적 수행은 아직도 역사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어떤 의미에서 공화국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도 속시원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저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Republic 이라는 국명을 쓰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Republic of Korea로 표기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공화국이 아니냐는 석연치 않은 답변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촛불시위 때 유행하던 민중가요에서 이 언명이 노래가사로 회자 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원래 공화제라 함은 고대 로마시대의 공화정에서 기원한다. 즉 왕이나 황제 1인의 통치가 아닌 집단적 통치체제를 뜻했다.

오직 제한된 범위의 귀족집단에 대한 무한책임과 그에 상응하는 권한을 보장하는 체제였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 부유한 상인집단이 도시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나타난 정치제도가 공화정의 근대적 시조였다. 이후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이 발발하면서 기존의 왕들이나 귀족들을 배제한 채 신흥 상공인들이 정치권력을 그 자신들 사이에 독점적으로 공유하면서 확립된 정치체제가 근대적 공화제이다. 이 공화제는 이론적으로는 민중 대다수의 정치참여를 보장했으나, 현실에 있어서는 극히 일부의 상층 시민들이 그들의 재력과 권력을 보장하기 위해 내세운 이념이었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근대초기까지 간헐적으로 등장했던 공화제는 그 어떤 의미에서건 대중의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수 특권계층의 권익을 법률적으로 확고히 보장하는 정치제도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만 공화제 하의 정치권력은 대중의 동의와 지지를 전제하고 있었고, 또한 집권세력의 정치적 권한에 상응해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그들의 책임이 최대한 강조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봉건제나 왕정과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아이러니의 점철이다. 소수의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공화제의 논리는 역사의 역동성에 떠밀리어 드디어 대중의 정치참여를 담보하는 제도로 발전돼 갔고 19세기를 통해 등장한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드디어 공화주의는 대중 민주주의의 이념과 결합하게 됐다.
이제 공화주의는 모든 민중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보장하게 됐고,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권한과 책임을 요구하는 정치제도로 발전했다.

급기야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는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았으며 서구의 예를 뒤따라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순차적으로 채택하는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1948년 독립된 대한민국은, 그 구성원들 대부분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이념과 특히 그 실천적 의미를 미처 알지 못한 채 출발했다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 중에서 민주주의는 지난 반세기간 투쟁과 우여곡절을 거쳐 그 의미가 십분 이해되고 그 실천이 발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공화국에 대한 시민의 이해와 실천적 참여, 특히 국가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에 구성원 모두가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이제부터 시작인 듯하다. 2002년 월드컵 응원 열기에서 시민들은 공화국의 일체감을 축제처럼 즐겼고, 2008년 촛불시위에서 시민들은 공동체에 대한 공동의 책무감을 자발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임상우 편집기획위원 / 서강대·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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