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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옛 교육 방식은 틀렸을까
[學而思] 옛 교육 방식은 틀렸을까
  • 김남섭 서울산업대·러시아사
  • 승인 2009.04.2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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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강의 방식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1980년대 초반에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학생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도 교수가 어떤 내용과 방식으로 강의하는지, 또 무엇을 근거로 학점을 부여하는지 등에 대해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의와 관련된 모든 것은 교수들의 고유 권한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 때문에 강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그들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 듯하다. 무엇보다 대학은 유능한 사회인을 배출해야 하는 곳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공부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이에 맞춰 대학 당국과 학생들은 “구태의연한” 강의 내용과 방식으로 수업을 “적당히 때워 온” 교수들에게 연일 비난을 쏟아내며 강의를 완전히 혁신할 것을 강하게 주문한다. 게다가 교수들의 자율적 자기 개혁을 믿지 못한 대학 당국은 강의를 잘하는 법에 관한 강연을 마련한다, 강의 평가 시스템을 체계화한다, 등 부산을 떨면서 교수 사회에 대한 여러 규제를 마련하여 오랜 강의 습관에 머물러 온 교수들을 당혹하게 한다.

  물론 지금까지 교수 사회에 많은 문제가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수십 년도 더 된 빛바랜 강의노트로 학생들의 원성을 자초하고 있는 교수가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여전히 일부 교수들이 새로운 강의 기법의 개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하던 대로의 옛 방식만 고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교수들의 존재를 이유로 지난날의 교육 방식은 무조건 좋지 않다고 하는 선입견이 우리 사회에 항상 진실인양 통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언급되는 것은 교수자 주도의 강의 위주 교육 방식은 항상 나쁘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과 동일시되면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주범으로 언제나 지목된다. 대신 교수들이 지향해야 할 교육 방식은 학생들을 수업에 활발히 참여시킬 수 있는 토론식 교육이다. 교수가 특정 주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형성해 나감으로써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경우 현실을 무시한 이상에 불과하다. 필자는 특히 1학년 학생들을 수업 시간에 만날 때마다 토론식 교육의 허망함을 확인하곤 한다. 토론식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학생들이 나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머릿속에 정리된 지식이 없이는 토론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사 토론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뜬구름 잡기 식의 이야기만 서로 하다 말 뿐이다. 더군다나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서양사 과목의 경우 대다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 세계사라는 과목을 처음 접하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토론이 원활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관련 지식을 쌓는 단계가 먼저 필요하고 이것은 강의식 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강의 내용을 판서하는 전통적인 강의 방식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강의 기법으로 강요하다시피 요구되는 것은 멀티미디어의 활용이다. 학생들에게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사진을 보여주거나 동영상을 틀어주는 것은 졸던 학생들을 잠시나마 깨우고 수업에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종종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생들은 다채로운 그림의 움직임이나 현란한 색깔에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교수가 전달하려는 실제 강의 내용은 오히려 놓쳐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빠른 화면의 전환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 내용을 요약하여 노트에 정리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하기도 한다. 수업 시간에 파워포인트나 동영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 많은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멍하니 화면만을 응시하거나 심지어 어둠을 이용하여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멀티미디어 방식이 갖는 한계 때문이리라.

  따라서 토론식 수업 방식이나 멀티미디어의 활용 등이 새로운 교육 기법으로 무조건 찬양되고 그 반대로 교수들이 전통적으로 견지해 왔던 강의 위주의 교육방식이 낡은 기법으로 무조건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식은 이 두 기법 사이의 중간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며, 그 배분의 비율은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 강좌의 목표와 특성에 따라 모두 달라질 것이다. 물론 그 정확한 비율을 찾는 것은 교수 각자의 몫이며, 그런 만큼 강의는 교수에게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수고를 요구하는 괴로운 일이기도 하다.

김남섭 서울산업대·러시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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