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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아메리카노와 WBC
[문화비평] 아메리카노와 WBC
  • 이옥순 서강대
  • 승인 2009.04.13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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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서강대

교수제위께 문제를 내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련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어디라고 생각하시는가? 아마도 대다수는 차의 원조에 해당하는 중국이나 차를 마시는 단순한 일을 ‘도(道)’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일본을 떠올리실 것이다. 혹시 눈치가 뛰어난 분은 ‘다질링’ ‘얼그레이’ 등의 홍차 생산국인 인도를 ‘찍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게 가까운데 있지 않다.

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최대 차생산국인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바꾸지 않겠다고 거만을 떤 영국이다. 연전의 통계를 보니 오후에 ‘티타임’을 가지는 영국인은 1인당 연간 10파운드, 약 2천 잔의 차를 마신다고 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다섯 잔을 마시는 셈이다. 영국의 작가 사무엘 존슨은 한 자리에서 차를 서른일곱 잔이나 마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국에서 ‘본차이나’가 발달한 것은 그 산물이리라.

그 다음으로 차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영국과 지리적으로 이웃이지만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일랜드다. 리비아,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이라크도 차의 소비국이라는 점에서는 세계의 ‘강대국’이다. 기이하고도 당연하지만, 이들 나라는 한때 영국과 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연계된 공통점이 있다. 오늘날 최대의 차 생산국인 인도와 스리랑카도 영국의 지배를 받은 아픈 과거를 공유한다.

한낱 기호식품이 역사적으로 연계되고 때로 세계의 역사를 바꾼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근대 동양과 서양의 최초의 물리적 한판인 19세기 초의 아편전쟁은 비싼 중국차의 구입대금을 결제하려고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몰래 중국에 들여간 영국에게 일단의 책임이 있었다. 영국은 아예 제국 안에서 차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식민지인 인도와 스리랑카에 홍차농장을 만들었고, 그렇게 홍차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미국과 역사적으로 깊이 연계된 우리나라에서는 홍차보다 커피가 압도적으로 사랑을 받는다. 단골을 가진 유명한 커피전문점이 도처에서 성업 중이고, 미국의 커피전문점인 ‘별다방(스타벅스)’과 ‘콩다방(커피빈)’이 도시의 이정표가 된지도 오래다. 최근에는 도넛과 햄버거를 파는 미국발(發) 패스트푸드점들까지 커피시장에 뛰어들면서 우리에게 커피는 헤어질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간다. 영국인이 홍차를 마시듯이 하루에 다섯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많다.

미국식의 커피전문점이 많은, 미국적인 문화가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국내에서 미국의 메이저리그를 훤히 꿰고 있는 분도 적지 않다. 최근에 막을 내린 WBC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 팀은 존재를 증명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는데, 언론의 호들갑이 거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좋아한 나도 그 덕분에 며칠간은 충분히 즐거웠다.

누구나 알다시피 WBC의 W는 World의 약자이다. ‘세계’라는 이름을 앞에 내세웠으나 야구는 세계적인 운동경기가 아니라 일본, 대만, 우리나라, 필리핀, 쿠바,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미국과 이런저런 이유로 관련된 나라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경기’이다. 필리핀의 서쪽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야구를 모르고 유럽에서도 야구경기를 볼 순 없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의 야구 실력은 반쪽의 세계에서만 진실인 것이다.

영국과 역사적으로 연계된 나라들은 홍차를 마시는 습관처럼 야구와 유사한 크리켓을 좋아한다. 종주국 영국을 필두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연방, 케냐 등은 그들만의 크리켓 경기를 벌이며 과거의 인연을 잇고 있다. ‘월드컵’이라는 이름의 게임도 열린다. 내가 유학한 인도는 다른 스포츠에선 늘 죽을 쑤지만 크리켓에서만은 국민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으며 강성을 자랑한다.

여기서 ‘힘’과 연계된 음료를 버리고 숭늉을 마시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엔 마실 것이 없어?” 라면서 커피를 마시는 나를 대놓고 비난하는 내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도 있으나 삶에 선택할 대안이 많은 것이 나쁠 건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해 인간이 가진 호기심을 비웃어서도 안 된다. 사실 이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의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우리 것을 좋아하면서도 가끔 '별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므로.

그럼에도 역사를 공부하는 나는 이방의 문화와 ‘열렬한 연애’에 빠진 우리 사회가 편하지만은 않다. 100년 뒤, 200년 뒤의 역사학자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풍’이 유행했다고 하려나? 장벽을 높이 쌓고 문을 닫아걸어야 보존이 될 만큼 우리 문화가 허약한 건 아닐지라도 세계화와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진행되는 문화적 동질화의 거대한 불도저 앞에서 우리 것을 지킬 ‘권리’와 ‘책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커피를 마시면서.^^

이옥순 / 서강대 동아연구소 인도근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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