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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도목수의 ‘不親小勞’
[學而思] 도목수의 ‘不親小勞’
  • 홍승직 순천향대·중문학
  • 승인 2009.03.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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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해 전인가, 모 회사 이미지 광고에 등장했던 중요무형문화재 최모 대목장의 한마디에 뭔지 모를 여운이 한참 맴돌곤 했었다. “이 사람아, 이음새 하나가 천 년을 결정하는겨.” 최목수의 이 한마디에는 오랜 세월 쌓여온 경험에서 우러나는 자신과 신념과 고집이 묻어나온다(이 한마디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지, 웹에서는 패러디 버전까지 유행했다고 한다).

 

목수 세계에서 필생의 경험과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권위가 전달되는 이 광고를 보다 보면, 목수 중의 우두머리 도목수의 모습에서 리더의 모습을 간파한 중국 당나라 때 어느 문인이 쓴 글이 떠오른다. 당나라와 송나라를 통털어 천하의 문장가로 손꼽혔던 여덟 사람 ‘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인 유종원이 쓴 『도목수 이야기(梓人傳)』이다. 지면 관계상 시작 부분만 번역을 훑어보기로 한다.

裴封叔이라는 사람 집이 光德里에 있었다. 어떤 도목수가 문을 두드리며, 그 집 문간방을 얻어 살기를 원했다. 그가 들고 다니는 것이라고는 자, 줄자, 컴퍼스, 곱자, 줄, 먹같은 것 뿐이었고, 갈고 깎고 하는 공구가 없었다. 뭘 잘 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목재를 잘 살피지요. 마룻대와 집의 설계를 보면서, 높게 할 지 깊게 할 지, 둥근 모양으로 할 지 네모 모양으로 할 지, 짧게 할 지 길게 할 지, 적절한 대책을 세워서 제가 일을 시키면 모든 목수가 일을 하지요. 제가 없으면 그들은 집을 단 한 채도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기용돼 일을 하면 저는 연봉을 세 배로 받고, 私家의 공사를 하면 저는 총 공사비에서 거의 반을 가집니다.”

그 후 언젠가 그의 방에 들어가 봤는데, 침대 다리 하나가 빠졌건만 고치지 못하면서 “다른 목수를 불러야지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연봉을 탐하고 재물을 밝히는 사람이라며 나는 그를 몹시 비웃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천하의 목수가 모두 자기 밑에서 설설 기며 자기 지시를 따라야 하고, 자기가 없으면 집이 단 한 채도 완성되지 않는다는 자칭 목수 중의 우두머리 도목수가 자기 침대 다리 하나 빠진 걸 고치지 못하다니. 자기 침대 다리 하나를 고치기 위해 다른 목수를 불러와야 하다니. 그러면서 어떻게 천하의 목수들을 지휘 통솔할 수 있는가.

이후 ‘나’는 길을 가다 우연히 도목수의 작업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수많은 목재를 쌓아놓고, 수많은 목수가 저마다 연장을 손에 들고 그를 향해 빙 둘러서 있는데, 여기를 도끼로 치라면 도끼를 든 목수가 부리나케 달려와 치고, 저기를 톱으로 썰라 하면 톱을 든 목수가 부리나케 달려가 썰고…… 모두가 오로지 그의 명을 따를 뿐이었다. 완성된 건물의 마룻대에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가 짓다”라고 기록을 하는데, 수많은 목수의 이름은 단 하나도 없고, 오로지 그의 성명만 기록될 뿐이었다.

사실 도목수는 거대한 규모의 건물 공사를 총괄하는데, 그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그 건물의 침대 하나 의자 하나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겠는가! 여기서 나온 말이 ‘不親小勞’이다. ‘자잘한 일을 직접 하지 않는다’ 정도로 옮길 수 있으리라.

우화 전기 형식의 이 글에서는 두 가지 메시지가 전달된다. 첫째는 말 그대로 사람은 저마다 지위와 위치에 따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도목수는 도목수로서의 할 일, 일반 목수는 일반 목수로서의 할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둘째는 ‘親小勞’하는 도목수가, 즉 줄자나 먹줄을 내팽개치고 직접 톱이나 도끼를 들고 다니는 도목수가 너무 많다는 말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건물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일반 목수가 할 일을 침해까지 하는 격이 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유종원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후자이다.

이른바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책임진 분야의 앞날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본분은 뒷전으로 하고, 직접 챙긴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시시콜콜 간섭하는 경우가 예나 지금이나 만연하기 때문이다.

홍승직 순천향대·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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