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1:00 (일)
[대학정론] ‘密林의 王者’와 생활문화
[대학정론] ‘密林의 王者’와 생활문화
  • 박현수 논설위원 /영남대·인류학
  • 승인 2009.03.16 14: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토록 일찍 2차대전이 끝나고 나라가 해방될 줄 몰라서 자기는 친일을 한 것이라고 서정주는 말했다. 맥아더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돌연' 압록강을 건너와 북한군에 가세할 줄 몰라 미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해 웃음거리가 됐다.

나는 미국에서 흑인대통령이 이토록 일찍 출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전부터 미국 흑인 인구의 증가속도를 보면서 언젠가는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았지만 이는 먼 훗날을 걱정하는 일종의 黑禍論的 담론이었다. 미처 몰랐던 것은 자기 책임이겠지만 흑인 대통령의 등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은 타인종과 타문화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일 것이다. 많은 한국의 민중이 외국인종, 외국민족, 외국문화와 접하게 된 것은 식민지 시대와 그 이후의 일본, 미국과의 관계에 바탕한 것이었으며 이들을 통해 더 먼나라 사람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가장 먼저 본 영화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로버트 테일러가 출연한 ‘쿼바디스’를 꼽는, 해방 전후 출생 세대들은 대체로 미국의 서부영화로써 인디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갖게 됐으며, 식민지 소년 철민이와 늙은 추장 제가, 그리고 기차처럼 거대하고 신령스러운 뱀 다나가 나오는 ‘密林의 王者’를 통해 아프리카 흑인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이 만화는 13권짜리 장편 극화였다.
적어도 대도시에서 자란 그 시대 아이들은 서점에서 새 號가 나왔는지 기다리던 이 만화를 처음 본 만화로 기억한다.

어렴풋하게 서봉재라는 사람이 그린 것으로 표지에 적혀있었던 것 같은데, 제 10권쯤부터는 윤모라는 사람이 그린 버젼이 나란히 간행돼 아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비행기 사고로 아프리카 밀림에 떨어지게 된 철민이가 마사이족 추장 제가의 보살핌으로 그곳 사회에서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같은 존재가 돼 악한을 징벌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여러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였다.

 
뒤에 생각해 보면,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오는 늘씬한 마사이족의 외관이나 초원의 목축생활에 대한 묘사에는 충실한 자료가 이용됐던 것이 틀림없다.

한 세대의 對外觀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50년대 아동의 생활을 살필 때 간과할 수 없는 이 자료는 그 자체로서 집중적인 분석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러나 이 연작 만화는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누구도 이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서, 아무도 이를 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별수 없다.

언젠가 서로 기억을 일깨워 이 만화를 복원해내어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모임이라도 꾸며야할 것 같다.
그런데, 1955년 무렵 한국의 ‘밀림의 왕자’는 이보다 몇 해 앞서 일본의 야마가와(山川物心治)가 그려낸 ‘少年王者’와 ‘少年케냐’ 시리즈의 번역에 가까운 번안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러니 한글판은 이 일본판에 의해 어렵지 않게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기분이 씁쓸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짜 개탄할 일은 철민이라는 이름이 일본 캐랙터의 개명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에는 그토록 우리를 열광시켰던 이 만화가 한권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동경의 고서점에서는 유리상자에 모시어 전시된 그 만화들을 볼 수가 있다.

박현수 논설위원 /영남대·인류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